1604년 진천현감을 지냈다. 매화로 이름을 떨쳐 이정(李霆)의 묵죽, 황집중(黃執中)의 포도와 함께 삼절(三絶)이라 불렸다. 동 시기 문인화가 조속(趙涑) · 조지운(趙之耘)과 함께 조선 중기 매화도를 대표하는 독특한 화풍을 형성했다고 평가받는다.
대표작인 「월매도(月梅圖)」는 당시 많이 그려지던 월매도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어몽룡의 개성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굵은 줄기와 가는 줄기가 곧고 기운차게 뻗어 오른 간소한 구도, 듬성듬성 매달린 단출한 형태의 매화꽃과 봉오리, 고담(枯淡)하고 시적인 운치가 특징이다. 매화꽃은 두 개의 암술이 뿔처럼 그려진 것, 정면에서 바라본 꽃과 꽃술이 ‘*’모양을 띠는 것, 네 개의 점으로 ‘정(丁)’ 자 모양의 꽃받침을 그린 점이 독특하다.
또한 꽃술을 나타내는 점과 나뭇가지의 태점(苔點)을 짙은 먹으로 찍어 동적인 느낌을 주었으며, 굵은 매화 줄기에는 비백법(飛白法)을 사용하여 세월의 흔적을 드러냈다.
대각선 구도와 보다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진 「묵매도(墨梅圖)」는 어몽룡 매화도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정갈한 매화 가지와 몰골법으로 그려진 꽃과 꽃받침 표현에서 그의 전형적인 화풍이 확인된다.
명나라 양호(楊鎬)는 어몽룡의 묵매를 보고 “화격이 최고로 좋으나 다만 거꾸로 늘어진 모양이 없는 것이 잘못되었다.”라고 평한 바 있다. 주지번(朱之蕃)은 "꽃받침이 모두 위를 향하고 있어 살구꽃 같다."고 혹평했는데, 이는 어몽룡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매화도가 중국과 다른 고유한 양식을 확립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