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장인에 이어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으며, 벼슬은 정6품 사과(司果)에 이르렀다. 1617년 통신사행(通信使行)에 정사(正使) 오윤겸(吳允謙), 부사(副使) 박재(朴榟), 종사관 이경직(李景稷)과 함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616년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제작에 참여한 이래 궁중 행사에 여러 차례 차출되었다. 1624년에 제기악기도감(祭器樂器都監), 1627년에 소현세자의 가례도감, 1628년에 공신 녹훈을 위한 소무영사녹훈도감(昭武寧社錄勳都監), 1630년에 선조의 목릉을 옮기기 위한 천봉도감(遷奉都監), 1633년에 창경궁수리도감, 1635년에 원종과 인헌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기 위한 부묘도감(祔廟都監)에 동원되었다.
간송미술관 소장 「부상관일(扶桑觀日)」이 유성업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그림에 작가의 관서는 없지만, 오랫동안 유성업의 작품으로 전해졌다. 작은 크기의 비단에 그려진 청록산수화로, 도식적인 삼단 구성과 뭉게구름 같은 바위 형태, 게 발톱 모양으로 뻗은 주2와 먼 산에 바늘처럼 표현된 나무는 조선 초기 화풍과 가깝다. 계화(界畵)로 그려진 건축물과 인물에 진한 채색이 사용되었으며, 조선 중기 절파(浙派) 주3보다 고식의 표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