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617년,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도화서 화원.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아버지와 장인에 이어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으며, 벼슬은 정6품 사과(司果)에 이르렀다. 1617년 통신사행(通信使行)에 정사(正使) 오윤겸(吳允謙), 부사(副使) 박재(朴榟), 종사관 이경직(李景稷)과 함께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616년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제작에 참여한 이래 궁중 행사에 여러 차례 차출되었다. 1624년에 제기악기도감(祭器樂器都監), 1627년에 소현세자의 가례도감, 1628년에 공신 녹훈을 위한 소무영사녹훈도감(昭武寧社錄勳都監), 1630년에 선조의 목릉을 옮기기 위한 천봉도감(遷奉都監), 1633년에 창경궁수리도감, 1635년에 원종과 인헌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기 위한 부묘도감(祔廟都監)에 동원되었다.
간송미술관 소장 「부상관일(扶桑觀日)」이 유성업의 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그림에 작가의 관서는 없지만, 오랫동안 유성업의 작품으로 전해졌다. 작은 크기의 비단에 그려진 청록산수화로, 도식적인 삼단 구성과 뭉게구름 같은 바위 형태, 게 발톱 모양으로 뻗은 해조묘(蟹爪描)와 먼 산에 바늘처럼 표현된 나무는 조선 초기 화풍과 가깝다. 계화(界畵)로 그려진 건축물과 인물에 진한 채색이 사용되었으며, 조선 중기 절파(浙派) 화풍보다 고식의 표현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단행본
- 이정은, 『조선통신사 수행화원 연구』(경인문화사, 2020)
-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상』(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논문
- 박정혜, 「의궤를 통해서 본 조선시대의 화원」(『미술사연구』 9, 미술사연구회, 1995)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