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이다. 자는 구여(九如)이고, 호는 학석(鶴石) · 형당(蘅堂) · 소천(小泉)이다. 아버지는 유명훈(劉命勳)이고, 어머니는 박윤묵(朴允黙)의 둘째 딸 밀양 박씨이다. 동생은 유재호(劉在頀)이다. 아버지 유명훈은 김정희(金正喜)의 장황사로, 김정희가 『난맹첩(蘭盟帖)』을 그려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규장각 서리를 지낸 외할아버지 박윤묵은 정이조(丁彛祚)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김정희와 인연이 있었다. 유재소 또한 이러한 집안 배경을 바탕으로 김정희 문하에서 서화를 배울 수 있었다.
유재소는 정식 시험이 아닌 특별한 계기로 임금의 은총을 입어 무과에 합격한 것으로 보인다. 정지윤(鄭芝潤)이 쓴 시의 주석에 따르면, 유재소는 군영에 소속되어 있지 않지만 특별히 무과에 합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40세 때인 1868년 7월에는 훈련주부(訓鍊主簿)로 임명되었다가 금새 신병(身病)으로 초관(哨官)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하응(李昰應)의 주1이었으며, 벽오사(碧梧社) 동인 및 김정희 문하의 서화가 및 역관들과 가깝게 지냈다. 이초당(二草堂)을 경영하는 등 전기(田琦)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김정희에게 여러 차례 서련(書聯)에 대한 품평을 받았으며, 21세 때인 1849년에 그림 품평을 받은 내용이 『예림갑을록(藝林甲乙錄)』에 실려 있다.
유재소의 작품은 사의(寫意)와 문기(文氣)를 중시한 남종문인산수화가 주를 이룬다. 간일한 구성과 소략한 필묵을 사용한 소림모옥도(疏林茅屋圖), 은거 산수화, 방작(倣作), 미법산수도(米法山水圖)가 다수를 차지한다. 청대 안휘파(安徽派)와 석도(石濤)의 영향이 간취되는 산수화는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에 비해 이색적이다. 현전하는 작품으로 「추림소산도(秋林疏散圖)」(1849), 「추수계정도(秋樹溪亭圖)」, 「미법산수도」, 「청송도(靑松圖)」 등이 있다. 인물화로는 전기가 화제를 쓴 『이초당합작화첩(二草堂合作畵帖)』이 있는데, 주2으로 그려진 탈속적인 인물 표현과 절제된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그 외, 김정희의 영향이 두드러진 「묵란도」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