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자는 지화(穉和)이고, 호는 해부(海夫) · 남석(南石) · 옥해도인(玉海道人) · 임하(林下) · 도록(嶌麓)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역관 집안인 밀양 변씨 효량공파(孝亮公派)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변이장(卞爾璋)이고, 할아버지는 변이장의 셋째 서자(庶子) 변정근(卞廷瑾)이다. 변정근의 첫째 아들 변탁(卞琢)이 변지순의 아버지이며, 어머니는 최태륜(崔泰崙)의 딸이다. 2남 1녀 중 첫째이며, 동생은 변지화(卞持華)이다. 큰아버지는 변박(卞璞)이고, 변지한(卞持漢)과는 사촌이다.
그의 집안은 18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서울에서 동래로 이주했으며, 변박, 변탁, 변지순, 변지화, 변지한 모두 동래 지역에서 화가로 활동했다.
변지순은 무과 급제 후 17991804년에 최말단 무관직을 지냈다. 이후 18121818년경 동래부 소속 무임직(武任職)을 역임했으며, 1819~1831년에는 미전진(美錢鎭) 첨사, 오위장(五衛將), 충익장(忠翊將), 전라감영 중군(中軍) 등에 임명되었다. 1826년에는 숭릉(崇陵)의 개보수 담당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1819~1820년경 서울에 머물며 홍길주(洪吉周) · 홍석주(洪奭周) 형제와 시로써 교유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1823년경 조인영(趙寅永), 조병구(趙秉龜)와 시회를 가졌으며, 1830년경 좌의정 박영원(朴永元)이 주관한 시회에 참석하였다. 김홍도의 「해산선학도(海山仙鶴圖)」와 「수하오수도(樹下午睡圖)」는 변지순을 위해 그린 것으로, 1798년경 두 사람이 교유한 사실을 알려준다.
변지순의 작품은 회화 40여 점, 글씨 10여 점이 전한다. 초기작으로 여겨지는 작품에는 김홍도와 강세황의 영향이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후 18세기 후반 화풍에서 벗어나 간결한 구성과 산뜻한 채색, 활달한 미점(米點)이 두드러지는 남종문인화풍을 구사했다. 주1을 사용한 작품과 지두법을 연상시키는 거칠고 과감한 필치는 그의 개성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조선(朝鮮)’이란 글씨가 적힌 대일교역용 회화를 제작하는 한편, 중앙 화단의 최신 화풍을 수용하여 직업 · 기능인적인 면모를 넘어 자신만의 개성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시고(詩稿)』[1818], 『화첩』[개인 소장], 「산수도」 8폭 병풍, 『서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