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경보(敬寶). 조경(趙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진두(趙鎭斗)이고, 아버지는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이며, 어머니는 맹숙춘(孟淑春)의 딸이다. 신정왕후(神貞王后: 追尊王 翼宗의 妃)의 오빠이다.
1822년(순조 22) 사마시에 합격, 음보(蔭補)로 세자익위사부수(世子翊衛司副率)가 된 뒤, 1827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저작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1829년 동지정사(冬至正使) 유상조(柳相祚)를 따라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한성부부사과와 겸문학을 겸하였으며, 책저도감교관(冊儲都監敎官)을 지내고, 1832년 좌부승지를 거쳐 대사성에 올랐다. 1836년(헌종 2) 이조참의를 거쳐 호조참판을 역임하고, 1840년 홍문관부제학·규장각직제학을 지냈으며, 그 뒤 금위대장·총융사·훈련대장·행호군 등을 역임하였다.
1844년 한성부판윤에 오른 다음 예조판서에까지 이르렀고, 이듬해에는 이조판서·공조판서에 오르게 되었다. 이 때 조병현(趙秉鉉)과 함께 풍양조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로 안동김씨(安東金氏)와 권력다툼을 벌이는 데 앞장서서, 삼촌인 조인영(趙寅永)이 순원왕후(純元王后 : 순조의 妃)의 호의로 영의정에 오르자 이에 합세하여 정치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그 뒤 비행이 폭로되어 규탄을 받게 되고, 조병현·조인영 등이 연달아 죽고 조씨일파 전체가 몰락하게 되자, 정권에서 축출되었다. 글씨로 이름이 났으며, 고종 때 조대비에 의하여 익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