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이조판서,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 한성부부사과와 겸문학을 겸하였으며, 책저도감교관(冊儲都監敎官)을 지내고, 1832년 좌부승지를 거쳐 대사성에 올랐다. 1836년(헌종 2) 이조참의를 거쳐 호조참판을 역임하고, 1840년 홍문관부제학·규장각직제학을 지냈으며, 그 뒤 금위대장·총융사·훈련대장·행호군 등을 역임하였다.
1844년 한성부판윤에 오른 다음 예조판서에까지 이르렀고, 이듬해에는 이조판서·공조판서에 오르게 되었다. 이 때 조병현(趙秉鉉)과 함께 풍양조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로 안동김씨(安東金氏)와 권력다툼을 벌이는 데 앞장서서, 삼촌인 조인영(趙寅永)이 순원왕후(純元王后 : 순조의 妃)의 호의로 영의정에 오르자 이에 합세하여 정치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그 뒤 비행이 폭로되어 규탄을 받게 되고, 조병현·조인영 등이 연달아 죽고 조씨일파 전체가 몰락하게 되자, 정권에서 축출되었다. 글씨로 이름이 났으며, 고종 때 조대비에 의하여 익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헌종실록(憲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운석유고(雲石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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