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자는 탁지(琢之) 혹은 성지(成之)이고, 호는 술재(述齋) · 형재(荊齋)이다. 지역 화가로 일생을 동래부에서 거주하였다.
1760년에 그린 「동래부순절도(東萊府殉節圖)」와 「부산진순절도(釜山鎭殉節圖)」로 당시 경상도 관찰사였던 조엄(趙曮)의 인정을 받았다. 그 인연으로 1763년 통신사행의 정사가 된 조엄이 변박을 사행 인원에 포함시켰다. 그는 도화서 소속 화원은 아니었으나, 그림 실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도화서에서 파견한 김유성(金有聲)과 함께 에도[江戶]까지 통신사를 수행하였다.
통신사의 일본 체류 기간 동안 변박은 조엄의 요구에 따라 여러 임무를 맡았다. 통신사의 공식 행사를 모사하는 일 외에, 대마도와 일본 지도를 모사하고, 일본 민간에서 사용하는 기구들의 형태를 그림으로 남기는 일 등을 하였다. 「송하호도(松下虎圖)」, 「유하마도(柳下馬圖)」, 「제청견사용전운(題淸見寺用前韻)」 등의 작품이 지금까지 일본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