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의주(儀周)이고, 호는 녹촌(麓邨) · 송천노인(松泉老人)이다. 이명은 김의(金義) · 전인(錢仁)이다. 할아버지는 안삼(安三), 아버지는 안도(安圖), 삼촌은 안봉(安葑)이다. 아버지의 본명은 안상의(安尙義)이며, 안기는 안상의의 셋째 아들이다. 슬하에 아들 안원충(安元忠)을 두었다.
안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강희제의 권신(權臣) 명주(明珠)와 그의 아들 명규서(明揆敍)의 비호 아래 소금 장사로 부를 축적했다. 안기는 10세 후반에 염상(鹽商)으로 나섰으며, 1720년대 중반까지 톈진[天津]에 머물렀다. 이후 양저우[揚州]로 옮겨 염업에 종사했다. 어릴 적부터 명주 집안에 수장된 고서화를 접했으며, 명 말기부터 본격화된 상인들의 서화 수장 활동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왕휘(王翬), 초병정(焦秉貞), 양진(楊晋), 도락(涂洛) 등의 화가들과 감식가인 고유악(顧維岳), 서예가이자 학자인 장조(張照) 등과 교유하였다. 이러한 당대 명사들과 교유하면서 서화에 대한 감식안을 키웠으며, 소금 장사로 축적한 재력을 서화 수집에 쏟았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날 즈음 가세가 기울어 평생 동안 모은 수장품은 자손들에 의해 뿔뿔이 흩어졌다. 조선에서는 유득공, 박제가, 이덕무, 성해응에게 안기의 존재가 알려졌다.
안기가 자신이 수집하고 감상한 작품을 모아 정리한 책이 『묵연휘관(墨緣彙觀)』이다. 삼국시대부터 명 말까지의 법첩과 명화를 「법서(法書)」와 「명화(名畵)」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법서」는 총 461점이, 「명화」는 총 252점이 수록되어 있다. 안기는 회화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인의 필치와 정신을 따르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기년작을 중심에 두고 기타 저록과 제발(題跋), 재질과 인장 등을 작품 감식에 활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