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호조판서,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1844년에 호조판서·이조판서 등을 거쳐 이듬해에는 원접사(遠接使)가 되었다. 1846년에 진하 겸 사은사(進賀兼謝恩使)로 부사(副使) 조형복(趙亨復), 서장관(書狀官) 심희순(沈熙淳)과 함께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고, 이듬해 11월에는 김흥근(金興根)과 함께 국조보감찬집청교정당상(國朝寶鑑纂輯廳校正堂上)을 제수받았다.
1848년 서양선(西洋船)의 출몰로 동해안지방의 민심이 소란해지자 함경도관찰사로 특임되었다. 그 뒤 철종이 즉위하자 우의정에 올라 실록청총재관(實錄廳摠裁官)을 겸하였다. 다음 해 좌의정에 제수되었으나, 4월에 소를 올려 그 직을 사임하였다. 1854년(철종 5) 12월에 판중추부사로 있다가 죽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참고문헌
- 『헌종실록(憲宗實錄)』
- 『철종실록(哲宗實錄)』
- 『경산집(經山集)』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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