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이름은 이구(李球). 아버지는 인조의 3남인 인평대군(麟坪大君)의 6대손 이병원(李秉源)이며, 아들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이다.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서자인 정조의 이복동생 은신군 이진(恩信君 李禛)에게 입양하여 남연군에 봉해졌다. 부인은 여흥민씨이다.
1771년(영조 47) 양부 은신군이 김구주(金龜柱) 등의 모함으로 관작을 빼앗기게 되어 제주도에 위리안치된 뒤 변사하자 불우한 처지에 놓였으나, 1815년에 수원관(守園官), 1821년에 수릉관(守陵官) 등 말단직을 역임하였다.
죽은 뒤 충청도 덕산(德山)에 묻혔다. 1868년(고종 5) 묘가 독일인 오페르트(Oppert,E.J.) 등에 의하여 도굴당하자 흥선대원군의 서양인에 대한 감정이 악화, 쇄국정책을 한층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다. 처음 시호는 영희(榮僖), 뒤에 충정(忠正)으로 개시(改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