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승정원도승지, 형조참판,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병조·사헌부·홍문관 등의 관직을 거쳐, 군기시부정(軍器寺副正)·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에서 전한(典翰)·직제학으로 승진되었다. 1555년 병조참지, 그 뒤 공조참의 등을 거쳐 승정원도승지가 되었다. 1560년 형조참판이 되었을 때 아선군(牙善君)에 봉군되었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로 전임, 그 해 명나라 세종의 탄일 만수절(萬壽節)을 축하하고 돌아왔다.
그 뒤 한성부좌윤에서 오위부총관으로 전임하였다. 1567년 명종이 죽자 수릉관(守陵官)에 제수되어 정헌대부(正憲大夫)에 가자되었고, 그 뒤 오위도총관 등을 거쳐 벼슬이 좌참찬에 이르렀으며, 기로소에 들어갔다. 문벌있는 가정에 태어나 충효를 겸전한 인물이며, 검소한 생활은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었고 권세에 아부하지 않았다. 서예에 능하였는데, 특히 예서(隷書)는 당대의 으뜸이었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동국문집(東國文集)』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신암유고(信庵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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