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이 아닌 수묵(水墨)으로 그려졌으며, 크기는 세로 122.4㎝, 가로 52.4㎝이다. 유복렬 편 『한국회화대관』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삼국유사』에 매화를 노래한 시가 있는 등 우리나라에서 매화를 애호한 역사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화폭에 매화가 그려진 예는 고려 말 조선 초 승려 해애(海涯, 14~15세기)의 제시가 있는 「세한삼우도(歲寒三友圖)」에서부터 볼 수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오며 매화에 관한 시와 매화도 관련 기록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다만, 조선 초기의 매화도는 남아 있는 작품이 거의 없고, 대부분 16세기 이후의 작품이다.
어몽룡(魚夢龍, 1566~1617)의 「묵매도」는 매화를 여백 가득한 화면에 힘이 느껴지는 필치로 그렸다. 화면 하단의 오른쪽에서 시작된 매화나무의 굵은 줄기는 마치 S 자를 뒤집어 놓은 듯한 곡선 구도를 보인다. 위로 올라간 줄기의 끝은 가느다란 마들가리로 표현되어 왼쪽 화면 밖으로 이어졌다. 전체적으로 중간 정도의 묵조(墨調)를 띠고 있으며, 주1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매화꽃의 꽃술이나 나뭇가지의 태점(苔點)은 짙은 먹으로 찍어 표현했다.
어몽룡의 묵매에 대해서는 당시 최고라는 호평과 부정적인 혹평이 동시에 존재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별집에서 “매화를 잘 그리기로 조선의 제일이라고 일컬어졌으나, 먹을 너무 진하게 써서 엉성하고, 담박한 맛은 조금 부족하나 필력이 웅건(雄健)하고 기고(奇古)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어몽롱의 「묵매도」는 여백을 중시한 간결한 구도를 보이며, 비백법을 사용한 깔끔한 묵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화풍적 특징은 조속(趙涑, 15951668) · 조지운(趙之耘) 부자와 오달제(吳達濟, 16091637), 송민고(宋民古, 1592~?) 등으로 이어지며 조선 중기 매화도 양식의 전형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