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은(灘隱) 이정(李霆, 1541~1626)은 대체로 30대 전후에 묵죽 화가로 이름을 알린 듯하다. 다만 현재 전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40대에서 70대에 그린 것이다. 이정은 임진왜란을 거친 40대에 이르러 묵죽화풍을 일신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간송미술관 소장 『삼청첩(三淸帖)』이 있다. 50대에서 60대에는 원숙하고 세련된 묵죽화를 그렸다. 70대에는 대나무의 상리(商利)와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여, 생략과 파격을 통해 자신만의 양식을 극대화하였다.
이정의 묵죽도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예로 동원(東垣) 이홍근(李洪根)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5폭을 들 수 있다. 「신죽(新竹)」, 「눈죽(嫩竹)」, 「연죽(煙竹)」, 「통죽(筒竹)」, 「설죽(雪竹)」의 5폭이며, 비단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다. 크기는 세로 148.8㎝, 가로 69.8㎝이다.
5폭 중 「통죽」은 장구한 세월을 견딘 늙고 큰 대나무로, 화면 중앙에 대나무를 수직으로 배치하여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죽절(竹節)과 죽간(竹幹) 처리가 자연스럽고 원숙하며, 음영을 위해 주1하였다. 하단의 바위는 강한 묵 처리와 주2 표현으로 무게감 있게 배치하였다.
각 폭 상단에는 그의 호 ‘탄은’이 쓰여 있고, 바로 아래에 2방의 인장이 찍혀 있다. 마지막 폭인 「설죽」에는 “천계 을축년 여름 탄은이 오여완을 위해 그렸다[天啓乙丑夏灘隱爲吳汝完寫].”라고 적혀 있다. 을축년은 이정이 죽기 1년 전인 1625년이며, 여완은 왕희지체에 능했던 당대의 명필가 죽남(竹南) 오준(吳竣, 1587~1666)의 자(字)이다. 전체적으로 노련한 필치를 보여주고 있어 만년의 무르익은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정의 묵죽도는 대나무의 생태와 기후에 따른 변화 양상을 다양하고 독자적인 양식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특히 소재가 지닌 특징을 부각시키는 화면 구성을 보이며, 농담의 차이를 이용한 전 · 후위 대나무를 조화롭게 표현하는 기법을 완성하였다. 그는 조선시대 최고의 묵죽 화가로, 당대뿐만 아니라 이후 시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실성이 강조되고 서예적 필력이 두드러진 그의 대나무 그림을 가리켜 당시의 문인 이정구(李廷龜, 1564~1635)는 “그 주3한 필치는 천기(天機)를 묘하게 움직여 주4의 신(神)과 주5의 사(似)를 겸비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