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수묵. 세로 148.8㎝, 가로 69.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灘隱(탄은)’이라는 그의 호가 쓰여 있고, 그 아래 2개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원래는 팔곡병풍 중의 하나였으나 현재는 독립된 축(軸)으로 되어 있다. 그의 다른 작품들에 묘사되는 대나무가 대개는 잎과 죽간(竹竿)의 크기가 균형잡힌 풍죽(風竹)임에 비하여, 여기에서는 높고 낮은 두그루의 통죽(筒竹)만을 그린 간단한 구도를 보인다.
두 그루 모두 윗부분이 잘려나가고 마디마디에서 몇 개의 작은 가지가 나와 그곳에 비교적 끝이 뭉툭한 잎들이 달려 있다. 통죽의 입체감은 마디의 아랫부분을 짙게 묘사하고 그 주위를 양쪽 끝이 강조된 초승달 모양의 곡선으로 감싸주어 효과적으로 묘사되었다.
잎은 예서체(隷書體)를 연상시키는 강한 필치를 보이며, 대부분 끝이 뭉툭뭉툭하게 잘려나간 모습으로 묘사되어 윗부분이 잘려나간 죽간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나무가 서 있는 둔덕은 간략한 필치로 강한 농담의 대조를 보이게 하여 역시 그림 전체의 묵조(墨調)와 잘 어울리게 하였다.
이와 같이, 사실성이 강조되고 서예적 필력이 두드러진 그의 대나무 그림을 가리켜 당시의 문인 이정구(李廷龜)는 “그 삽연(颯然 :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모양)한 필치는 천기(天機)를 묘하게 움직여 동파(東坡 : 蘇軾의 호)의 신(神)과 여가(與可 : 文同의 호)의 사(似)를 겸비하였다.”라고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