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왕실 종친(宗親) 출신 문인 화가인 탄은(灘隱) 이정(李霆, 1554~1626)은 묵죽, 묵란, 묵매 등 사군자(四君子) 그림에 이름이 났으며, 특히 묵죽화(墨竹畫)의 정형을 수립한 화가로 평가된다.
대표적 작품인 『삼청첩(三淸帖)』은 1594년(선조 27) 12월 12일, 이정이 41세 때 별서가 있던 충청남도 공주에서 제작하였다. 이때는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2년 여가 흐른 시기로, 임진왜란 발발 직후 왜적의 칼에 맞아 오른팔에 큰 부상을 입고 공주로 내려와 지내던 이정이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을 하고 난 후 심기일전을 위해 이 작품을 제작하고, 당대 대표 문인들의 글씨와 시문을 받아 함께 장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청첩』은 이정의 대나무와 매화, 난 등의 그림, 자작시와 함께 당대 문인들의 글씨와 시문으로 구성된 시서화(詩書畵) 합벽첩(合壁帖)이다. 이정의 그림이 제작된 다음해에 한호(韓濩, 15431605)와 최립(崔岦, 15391612)이 글씨와 서문을 쓰고 차천로(車天輅, 1556~1615)가 제시를 하여 장첩되었다.
이정 사후 『삼청첩』에 합장된 윤신지(尹新之, 1582~ 1657)와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발문에는 『삼청첩』이 선조의 부마 홍주원(洪柱元, 16061672)에 양도되었고, 병자호란 때 화재로 일부 훼손되었지만 여러 문사들의 도움으로 복원된 내역과 이후 풍산 홍씨 집안의 가보로 전승된 경위가 소상히 밝혀져 있다. 문헌상으로 알려진 유근(柳根, 15491627), 이안눌(李安訥, 1571 1637), 이덕온(李德溫, 1562~1635) 등의 제문은 합장되어 있지 않은 채 현존한다.
『삼청첩』은 대나무 12점, 매화 4점, 난 4점의 총 20점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흑색 비단 바탕에 금니(金泥)로 그려져 있다. 전체 크기는 세로 39.3㎝, 가로 45.8㎝이며, 화면 크기는 세로 25.5㎝, 가로 39.3㎝이다.
조선 전기 사군자 화풍의 토대였던 원대(元代) 사군자 화풍에다 명대(明代) 화보의 구성과 구도 등을 바탕으로 하여, 이정 특유의 개성을 드러내었다. 소재의 특징을 부각하기 위해 강한 필력으로 대범하고도 유연하게 표현된 대나무 마디와 가지, 대나무 잎들의 다양한 형태 및 정밀한 안배와 뾰족하고 길게 처리한 잎의 끝부분 표현 등은 조선 후기 화가들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삼청첩』은 조선시대 최고의 묵죽화가인 이정의 화풍이 심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그림들과 당대 유수한 문인들의 시문이 어루어진 작품으로서, 조선시대 문인들의 예술지향점과 화단의 경향을 유추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2018년 6월 2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