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시대, 「풍죽도」, 「설죽도」, 「우죽도」등을 그린 왕실 종친 출신 묵죽화가.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칼에 오른팔을 다친 후 집안의 전장(田庄)이 있던 공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 비단 바탕에 금니(金泥)로 그린 사군자와 자제시(自題詩)를 함께 엮은 시화첩인 『삼청첩(三淸帖)』의 마지막 폭에 '만력갑오십이월십이일탄은사우공산만사음촌우(萬曆甲午十二月十二日灘隱寫于公山萬舍陰村寓)'라는 제문이 있어 1594년(선조 27) 이전에 공주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의 호인 ‘탄은’은 공주의 탄천(灘川)에서 은거함을 뜻한다. 그는 이곳에 월선정(月善亭)을 짓고 말년까지 지냈다.
이정은 종실에서 태어나 화가로 활동하며 시서화 삼절(三絶)로 불렸다. 사군자를 섭렵하고 묵죽화(墨竹畵)에 뛰어나 유덕장(柳德章),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 3대 묵죽화가로 일컬어진다. 그는 조선 초까지 묵죽화의 근간이 되었던 원대(元代) 이간(李衎)의 화풍을 토대로 화보(畵譜)를 통해 유입된 새로운 명대(明代) 묵죽 양식을 수용하였다.
그의 가장 이른 기년작인 『삼청첩』은 대기 환경과 기후 변화에 따른 대나무의 생태를 순죽(筍竹), 통죽(筒竹), 고죽(枯竹), 우죽(雨竹), 풍죽(風竹), 노죽(露竹) 등으로 나누어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이정의 대나무 잎은 길쭉하면서도 끝이 매우 뾰족한 점이 특징적이며, 그는 짙은 먹의 대나무 뒤로 옅은 먹의 대나무를 반복해서 그려 마치 그림자가 비치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이정의 작품으로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금니죽도(金泥竹圖)」[1606]가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신죽도(新竹圖)」, 「풍죽도(風竹圖)」, 「설죽도(雪竹圖)」[1611], 「우죽도(雨竹圖)」[1622] 등이 전한다.
참고문헌
원전
-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단행본
- 『한국역대서화가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 백인산, 『조선의 묵죽』(대원사, 2007)
논문
- 최명진, 「종친화가 탄은 이정의 공주지역 활동과 지역문화적 의미」(『충청학과 충청문화』 28,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2020)
- 백인산, 「간송미술관 소장 《삼청첩(三淸帖)》의 역사성에 대한 고찰」(『헤리티지: 역사와 과학』 60, 국립문화유산연구원, 2013)
- 백인산, 「탄은 이정의 『삼청첩』 연구」(『동악미술사학』 5, 동악미술사학회,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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