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자는 중섭(中燮)이며, 호는 탄은(灘隱)이다. 세종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 1420~1469)의 증손자이자 익주군(益州君) 이지(李枝)의 아들이다. 초년기 행적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 없으나, 한양이나 경기 지역에서 성장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정3품 당하관(堂下官)에 해당하는 석양정(石陽正)에 봉해졌다가 뒤에 석양군(石陽君)으로 승격되었다.
증조할아버지 이구가 계유정난(癸酉靖難)에서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협조한 덕에, 경제적으로 여유를 누리며 서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유몽인(柳夢寅)은 『어우집(於于集)」 「월선정기(月先享記)」에서 “이정이 비단에 쌓여 자랐고 종신토록 녹을 받았다.”라고 했다. 허균(許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에도 “종실 석양정은 묵죽을 잘 그렸고 매화와 난초에도 능했다. 선왕[선조]이 매우 칭찬하여, 족자 한 폭을 그릴 때마다 많은 물품을 하사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칼에 오른팔을 다친 후 집안의 전장(田庄)이 있던 공주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은 비단 바탕에 금니(金泥)로 그린 사군자와 자제시(自題詩)를 함께 엮은 시화첩인 『삼청첩(三淸帖)』의 마지막 폭에 '만력갑오십이월십이일탄은사우공산만사음촌우(萬曆甲午十二月十二日灘隱寫于公山萬舍陰村寓)'라는 제문이 있어 1594년(선조 27) 이전에 공주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정의 호인 ‘탄은’은 공주의 탄천(灘川)에서 은거함을 뜻한다. 그는 이곳에 월선정(月善亭)을 짓고 말년까지 지냈다.
이정은 종실에서 태어나 화가로 활동하며 시서화 삼절(三絶)로 불렸다. 사군자를 섭렵하고 묵죽화(墨竹畵)에 뛰어나 유덕장(柳德章), 신위(申緯)와 함께 조선 3대 묵죽화가로 일컬어진다. 그는 조선 초까지 묵죽화의 근간이 되었던 원대(元代) 이간(李衎)의 화풍을 토대로 화보(畵譜)를 통해 유입된 새로운 명대(明代) 묵죽 양식을 수용하였다.
그의 가장 이른 기년작인 『삼청첩』은 대기 환경과 기후 변화에 따른 대나무의 생태를 순죽(筍竹), 통죽(筒竹), 고죽(枯竹), 우죽(雨竹), 풍죽(風竹), 노죽(露竹) 등으로 나누어 섬세하게 묘사하였다. 이정의 대나무 잎은 길쭉하면서도 끝이 매우 뾰족한 점이 특징적이며, 그는 짙은 먹의 대나무 뒤로 옅은 먹의 대나무를 반복해서 그려 마치 그림자가 비치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이정의 작품으로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금니죽도(金泥竹圖)」[1606]가 소장되어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신죽도(新竹圖)」, 「풍죽도(風竹圖)」, 「설죽도(雪竹圖)」[1611], 「우죽도(雨竹圖)」[1622] 등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