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장흥(長興)이고, 자는 백인(伯仁)이다. 생애와 활동에 대해 상세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마군후의 「반묘가수도(班猫假睡圖)」[간송미술관 소장]에 18세기에 활동한 여항시인 미산(眉山) 마성린(馬聖麟, 1727~1798)의 관서가 전해 서로 교유했을 가능성이 있다.
마군후의 작품으로는 고양이 그림과 풍속화가 전한다. 그의 고양이 그림은 조선 후기 화원으로 활동했던 변상벽(卞相璧, 약 17261775)의 영모화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변상벽의 「자웅장추도(雌雄將雛圖)」[간송미술관 소장]에는 조선 후기 문인화가 강세황(姜世晃, 17131791)과 마군후의 제문이 쓰여 있는데, 이는 마군후가 변상벽의 영모화를 직접 감상하며 그 화풍까지 습득했음을 추측하게 한다.
특히 마군후의 1848년 작 「묘도(猫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앞발을 들어 올려 머리를 긁적이는 고양이의 사실적인 동작과 자세의 표현에서 변상벽의 영향이 뚜렷하다.
봄날 나물 캐는 여인들의 일상과 아이에게 젖먹이는 장면을 정감있게 묘사한 1851년 작 「촌녀채종도(村女採種圖)」[간송미술관 소장]는 마군후가 풍속화도 잘 그렸음을 보여준다. 이외에 그의 작품으로 「쌍토도(雙兎圖)」[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와 「수하승려도(樹下僧侶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