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자도(百童子圖)는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는 사내아이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백자도(百子圖)로도 불린다. 백동자는 백자천손(百子千孫)을 두고 영화로운 삶을 살았던 주1의 삶을 그린 곽분양행락도(郭汾陽行樂圖)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의 당, 송 대부터 하나의 화제(畵題)로 등장했고 명, 청대를 거치면서 한국과 일본에서도 그려졌다.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의 「맹영광백동도가(孟英光百童圖歌)」에는 조선에 왔던 중국인 화가 맹영광(孟英光, 15901648)의 「백동도(百童圖)」가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백동자도의 원류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백동자도는 화려한 정원을 배경으로 놀이를 즐기는 백동자의 모습으로 구성된다. 장군놀이, 닭싸움, 연못 장면, 낮잠과 새 놀이, 나비 잡기, 관리 행차, 원숭이 놀이, 매화 따기 등의 놀이는 주2와 장수,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조선 후기에는 짙고 화려한 채색의 백동자도 병풍이 많이 제작되면서 다남(多男)과 자손 번창의 의미를 지닌 장식화로 활용되었다. 화려한 채색의 백동자도 병풍은 많은 자손을 낳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궁중의 가례(嘉禮)나 장엄용으로 제작되었다. 또 민간에서는 젊은 부녀자나 아이들 방에 주3을 바라는 장식물로 기능하였다. 백동자도는 19세기 이후 민화로도 많이 그려졌으며 최근 연구에는 백동자도가 풍자나 감계와 같은 넓은 상징성을 포함하는 다의적 장식화로 사용되었다는 지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