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곡사는 1368년(고려 공민왕 17) 지공(指空)·나옹(懶翁) 등이 창건한 절로, 임진왜란 때 전소되어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중창하였으며, 1687년(숙종 13) 태전선사(太顚禪師)가 다시 중건하였다. 그런데 대곡사 탑밭에서 출토된 금동불상과 대곡사다층청석탑, 그리고 이규보(李奎報)의 ‘대곡사 탐방시구(探訪詩句)’ 등의 자료를 참고하여 사찰의 창건 시기를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보는 견해도 있다.
대곡사는 진입 축선을 향하여 범종각·다층청석탑·대웅전이 동일 선상으로 놓이고, 중정(中庭)의 탑을 중심으로 상단에 대웅전을, 그 좌우에 명부전과 요사를 대칭으로 배치한 산지형 일탑식 가람이다. 대웅전은 장대석을 두벌대로 쌓은 기단 위에 동향으로 앉았으며, 막돌 덤벙주초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전면은 창호로 개방하였는데, 어간은 4분합 굽널띠살문이고 좌우 협간은 3분합문이다.
공포(栱包)는 내외 삼출목을 두어 외부 제공은 마구리가 수직으로 절단된 앙서형으로 조각하였고, 내부는 대들보 밑까지 초각(草刻)으로 연결하였다. 대들보 상부에 충량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들보를 놓아 화반대공으로 종보를 받치는 수법이 주목된다. 우물마루에 수미단(須彌壇)을 꾸미고 후불벽을 설치하여 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고 좌우 보처(補處)로 특이하게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불단 상부는 닫집[唐家]으로 장엄하고 보궁으로 장식하였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로 꾸몄다.
전체적으로 볼 때 구조 수법이 비교적 건실한 편으로, 지붕의 암막새에 나타난 명문인 ‘만력 32년’, 즉 1604년이 말해 주듯 조선 중기의 수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