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8년(혜공왕 4) 일길찬(一吉飡)으로서 아우인 아찬 대렴(大廉)과 함께 모반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왕궁을 30여일이나 에워쌌다.
그러나 결국 토평되어 구족(九族)이 멸하게 되고 아울러 재산과 보물들도 몰수당하여 왕궁으로 옮겨졌는데, 그의 재력은 반란을 일으킬 정도의 많은 사병을 양성할 수 있을 만큼 막대한 것이었다.
이 대공의 난을 시작으로 왕도(王都)와 5도주군(五道州郡)의 96각간의 상쟁이 벌어졌다. 이는 신라가 중대에서 하대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귀족간의 정권쟁탈의 한 양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