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원동 유적은 도원동을 중심으로 인근의 대곡동(大谷洞)·진천동(辰泉洞) 일대를 포함한다. 유적의 위치는 대구시의 서쪽 끝부분에 해당하며, 대부분 구릉간 농경지대로서 비교적 광활한 평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서쪽으로는 달성군 화원읍, 가창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도원동 유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 일대가 1989년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된 후, 대한주택공사 경북지사에 의해 택지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지역이 택지개발구역에 포함되어 일부는 발굴되어 가마의 구조가 드러났고 유적의 나머지 부분은 보존되었는데, 모두 6기의 가마가 효성카톨릭대학교박물관에 의해 1994년도에 발굴 조사되었다. 구조적인 면에서 도원동 토기가마는 모두 장타원형의 평면형을 가진 반지하식 굴가마(登窯)로 분류할 수 있다.
발굴조사 결과, ‘대곡택지개발지구’로 명명된 전체 개발면적 89만 9,177㎡(약 27만 2,000평) 내에서 축조상태가 양호한 삼국시대 토기가마터 6기를 비롯한 후대의 민묘 15기가 확인되었다. 이 중 토기가마터는 지금까지 역내(域內)에서 발견, 조사된 예가 매우 드물고, 단일 유적 내에 군집상태로 분포해 있으며, 축조시기도 이른 것이어서 당시의 문화 규명에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한편, 민묘는 대부분 간단히 묘광을 판 뒤 내부의 중앙에 목관을 설치한 구조이다. 민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자기류와 청동제 숟가락 등 소수의 예가 있다. 연대는 유구와 유물상의 특징으로 보아 대체로 고려시대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긴 시대폭을 지닌다.
아궁이는 경사면 아래쪽에 열려 있고 연소실과 소성실이 수평으로 일직선 배치를 보이는 전형적인 삼국시대 굴가마이다. 길이는 4.1m에 불과한 것도 있지만 제2호 가마처럼 9.1m에 달하는 것도 있는데 전체적으로 가마의 규모는 작은 편이다. 가마바닥의 경사도는 5˚에서 25˚이르며 가마바닥은 여러 차례 점토로 보수된 흔적이 있다. 가마 외벽의 바깥으로 지름 20여 ㎝의 돌들을 쌓아 보강하고 점토를 발라 가마 벽를 만들었다.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6세기를 전후한 것들이고 생산된 기종은 소형토기가 아니라 중형, 대형의 항아리가 주로 출토되었다.
도원동 유적 중에서도 토기가마터가 확인된 일대는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해 원상대로 복토를 한 후 현재 근린공원으로 조성하여 보존, 보호하고 있다. 이 외 나머지 일대는 택지개발사업이 완료되어 대규모 아파트촌을 이루고 있다. 도원동 유적과 관련해 현재 그린벨트로 지정되어 있는 인접 남편의 낮은 야산 일대에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곽(관)분이 밀집 조영되어 있다. 이 중 일부는 도굴의 흔적과 함께 분묘의 축조에 이용되었던 석재 등이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