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조선의 호적대장으로 단성, 대구, 울산, 언양 지역의 호적대장이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그 중 대구부 호적대장은 도시부와 농촌부가 함께 기록되어 있으며, 양적으로도 가장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대구부 호적대장은 1681년(숙종 7)부터 1876년(고종 13)에 이르기까지 모두 61식년(式年)의 자료가 남아 있다. 거의 모든 식년에 걸쳐 작성된 자료가 현존하는 셈이며, 현재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분량은 187책으로 행정면별로 총 902개의 면(面)이 현존한다. 모두 필사본으로 크기는 각기 다르나, 1825년(순조 26)도 이전의 것은 대체로 세로 60㎝, 가로 70㎝, 또는 세로 80㎝, 가로 60㎝ 내외이다. 그 뒤의 것은 대체로 세로 40㎝, 가로 30㎝ 내외이다.
대구부는 경상도의 감영(監營)이 설치된 조선후기의 주요한 행정도시 중의 하나였다. 1601년(선조 34) 경상감영의 설치 이후 대구부는 경상도의 행정중심지로써 발전함에 따라 그 규모가 확대되어 갔다. 또한 대구부는 평양, 강경과 더불어 조선후기 3대 상업도시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즉, 대구부는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행정도시였을 뿐만 아니라 상업 중심지로써 기능했던 곳이다. 이에 따라 감영이 위치했던 서상면(西上面)과 동상면(東上面)은 도시적 성격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던 지역이었으며, 나머지 면(面)들은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존재하였다.
따라서 대구부 호적대장은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의 주민 구성을 동시에 대비해 볼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각 면 말미에는 면 전체의 호구 통계가 있고, 각 연도 끝 책 말미에는 ‘승호(乘戶)’와 부 전체의 각종 통계[도이상(都已上)]가 기록되어 있다. 또, 호적 작성 관계자와 수령 및 관찰사의 서명·수결(手決)이 있다.
대구부 호적대장은 거의 200년에 가까운 기록으로 현존하는 호적대장 중 가장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또 한 지역에 대한 장구한 세월의 기록이라 시기별 변천상황을 아는데도 유용하다.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 지역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호적이라는 점에서도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