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7월대구자혜의원(大邱慈惠醫院)을 터전으로 대구의학강습소(大邱醫學講習所)로 인가되어, 같은 해 9월 1일에 개교하였다. 이듬해 3월 경상북도 도립의학강습소로 개칭하였으며, 1929년 12월 도립의학강습소로 정식 설립인가를 받았다.
1930년 3월 의학교로 지정되었고 1933년 3월 공립학교의 관제 개정에 따라 대구의학전문학교로 개편되었다. 같은 해 11월 지금의 동인동에 교지를 구입하고 본관을 비롯한 부대시설을 갖추었다.
전문학교 승격 당시의 직원구성은 교수 16명, 생도감(生徒監) 1명, 조교수 4명, 서기 1명, 강사 8명, 조수 6명 등이었으며 재학생수는 한국인 76명, 일본인 177명 등 총 253명에 달하였다.
민족항일기의 모든 교육이 그러하듯이, 전문기능에 속하는 의료요원 교육의 기회 취득에 있어서도 소수집단이었던 일본인이 거의 2배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졸업생은 대구의학강습소 시기에 제1회 29명, 제2회 29명, 제3회 11명, 제4회 14명 등 총 83명이었으며, 제2회 졸업생부터 「조선의사법」에 의거하여 정식 자격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의학전문학교로 개편된 뒤 1933년 3월의 졸업생은 한국인 16명, 일본인 49명이었으며, 광복까지 모두 14회에 걸쳐 838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이 시기 한국인 학생의 입학은 계속 억제되어 한국인 대 일본인의 졸업생 비율은 1:3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광복과 함께 고병간(高秉幹)이 교장으로 취임하고, 1945년 10월 1일 단과대학으로 승격하여 대구의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그 뒤 1951년 10월 경북대학교가 발족하면서 이 학교의 의과대학으로 통합되었다. →경북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