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규는 금강산에 입산하여 수도중 김도암(金道巖)으로부터 선도를 전수받고 선도교(仙道敎)를 일으켜 전국 각지에 포교한 결과 신도 수천명을 확보하면서 교세를 확장시켰다.
그러던 중 1928년 보천교(普天敎) 간부였던 이달호(李達濠) · 김응두(金應斗) 등과 함께 경성부 낙원동에 천궁(天宮)을 짓고 대도교라고 개칭을 하였다.
그 뒤 신도수가 5,000여 명에 달할 만큼 교세가 신장되었으나, 1933년 교당본부를 경성부외(京城府外) 숭인면(崇仁面) 돈암리(敦巖里)로 이전하면서 교세가 약화하기 시작하여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교리는 선도를 닦아 자아의 본령(本靈)을 새로이 일으킴으로써 자기의 천성을 밝히고 나아가 천하에 덕을 널리 펼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1934년 당시 포교소 1개소, 신도수는 남자 1,860명, 여자 1,000명으로 총 2, 860명에 이르렀으나 현재는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