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왕효(王侾). 숙종의 다섯째 아들이며 예종의 아우이다.
1106년(예종 1) 봉의동덕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보 수사도겸상서령 상주국대원후 식읍이천호 식실봉삼백호(奉義同德功臣開府儀同三司檢校太保守司徒兼尙書令上柱國大原侯食邑二千戶食實封三百戶)에 봉하여졌고, 1110년(예종 5) 광효공신 수태위(廣孝功臣守太尉)의 호가, 1114년(예종 9) 수인공신(守仁功臣)의 호가 더해지고 공(公)이 되었으며, 1122년(인종 즉위년) 태보(太保)에 올랐다.
이자겸(李資謙)의 난 때는 역모와 관련되었다고 하여 남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1129년(인종 7)에 소환되어 봉순동덕수절찬화공신 개부의동삼사 검교태사 수태보 겸상서령 상주국 식읍삼천오백호 식실봉오백호(奉順同德守節贊化功臣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守太保兼尙書令上柱國食邑三千五百戶食實封五百戶)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