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대사간,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817년 한권(翰圈)에서 3점을 얻었으나 한림소시(翰林召試)에서 낙방하고, 다시 2년 뒤에 한권에서 3점을 얻고 이듬해 한림소시에 김정희(金正喜)와 함께 합격하여 검열이 되었다.
이 후 여러 차례 청환직(淸宦職)을 역임하고, 1824년 겸춘추로 있으면서 사관을 선발하는 한림회권에서 상사와의 충돌로 인하여 중화로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홍문록에 올랐으며, 1827년 정자를 거쳐 수찬이 되어 이조원(李肇源)과 함께 역모를 하였다는 혐의로 김기후(金基厚)의 처벌을 상소하였다.
이 해에 진전(眞殿) 작헌례(酌獻禮) 때 대축(大祝)으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 대사간으로 발탁되었고, 1832년 이조참의를 거쳐 다시 대사간을 지낸 뒤, 이듬해 황해도관찰사가 되었다. 문장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 『순조실록(純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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