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호는 함화(咸和)이며, 시호는 전하지 않고 있다. 신덕(新德)의 아들이며, 할아버지는 제10대 선왕(宣王)이다.
즉위하자 여러 사신과 학생을 당나라에 파견하는 등 선왕에 이은 율령제국가수립에 노력하였고, 당나라와의 경제·문화 교류에 힘썼다. 왕자 명준(明俊)을 832·836·837년 세차례에 걸쳐 수십인과 함께 당나라에 파견하였으며, 왕자 광성(光晟)·연광(延廣)·대지악(大之萼) 등도 833·839·846년에 각각 당나라에 파견하여 당나라의 문화수용에 적극성을 띠었다.
이때 학생 해초경(解楚卿)·조효명(趙孝明)·유보준(劉寶俊)·이거정(李居正)·주승조(朱承朝)·고수해(高壽海) 등도 당나라에 유학하였고, 당나라에서는 장건장(張建章)이 서적을 가지고 발해에 들어오는 등 발해와 당나라의 문화적 교류는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편, 일본과도 빈번한 내왕이 있어, 선왕 때 이어 왕문구(王文矩)가 계속 파견되었고 하복연(賀福延) 등도 파견되었는데, 그 목적은 주로 신라 견제와 경제적 이해관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