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한글말살정책으로 인하여 1945년 당시 전체 인구의 약 50%가 문맹자라는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한글교육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적당한 교재 및 교수법이 미비하고 더불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에 기대한 성과를 얻지 못하였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함과 동시에 당시 기독교인 중에도 25%가 문맹자라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보다 조직적인 문맹퇴치운동을 펴나갈 기구 설립이 논의되었다.
그래서 대한기독교서회 총무 김춘배(金春培), 교육자 장이욱(張利郁)·이용설(李容卨), 한글학자 김윤경(金允經)·김선기(金善琪), 대한기독교교육협회 총무 남궁 혁(南宮爀), 농촌운동가 홍병선(洪秉璇), 사회사업가 김수철(金洙喆), 대한기독교서회 협동총무 프레이저(Fraser,E.J.O.), 미국 장로회 여선교사 겐소(Genso,J.F.) 등이 발기인이 되어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조직적인 문맹퇴치운동을 펴기로 합의하고 1949년 6월 협회를 창설, 초대 총무에 윤하영(尹河英)이 취임하였다.
이때 문맹퇴치운동의 권위자인 라우바흐(Laubach,F.)가 내한, 우리 나라의 실태를 조사하고 관계자들과 만나 토론하였는데, 그가 창안한 편찬방법에 따라 ≪한글 첫걸음≫이 만들어져 계명협회 사업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주요 사업으로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한글 교육으로 문맹을 퇴치하는 것이 그 하나였고, 글을 깨친 다음에는 독서를 통하여 책읽기를 습관화하고, 책에 담긴 지식을 실생활에 활용하여 생활 개선을 이룩하도록 하는 것이 다른 하나였다.
이로 인하여 전국에는 4,000여 개의 독서구락부가 만들어져, 건강·상식·농사·부업·생활개선 및 신앙 등을 위한 책들이 보급되어 큰 성과를 얻게 되었으며, 금주·금연·농사 개량·부업활동 등의 생활개선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독서구락부운동은 1962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세계계명사업대회에 소개되어 다른 나라에서도 이 방법을 활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의무교육 실시 등으로 문맹률이 많이 감소되자 국민들의 문맹교육에 대한 관심도 점차 식어 협회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교양서적 출판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기독교서회의 출판사업과 별 차이 없는 성격을 띠게 되었으므로 기독교서회와 통합하여 계명사업부라는 한 부서로 지탱하다가 1967년 3월에 폐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