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한 연대는 미상이나, 조선 초기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당시의 경내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명륜당(明倫堂)·동재(東齋)·서재(西齋)·전사청(典祀廳)·신문(神門)·홍살문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여 왔으며, 광복 이후의 사항은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