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성산군(星山君) 도유덕(都有德)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판관을 지낸 도효안(都孝安)의 손자로, 부원군 도홍정(都洪正)의 아들이며, 찬성사를 지낸 도응(都膺)의 아버지이다.
1380년(우왕 6) 왜구가 경산부(京山府)에 침입하여왔을 때 원수가 되어 양광·전라·경상도도순찰사(楊廣全羅慶尙道都巡察使)였던 이성계(李成桂)의 지휘를 받아 이를 토벌하였다.
1382년 한양천도 때, 이인임(李仁任)·임견미(林堅味)·염흥방(廉興邦) 등과 함께 왕을 호종(扈從)하였는데, 지나는 곳마다 온갖 패행을 일삼았다 한다. 그러나 권신 이인임의 인척인 까닭으로 중용되어 대언(代言)이 되었으며, 이듬해 제조정방(提調政房)이 되었다.
1384년 우왕이 총애하던 봉가이(鳳加伊)를 간통하였다는 참소로 인하여 서북면도체찰사로 좌천되었다. 1388년 벼슬이 찬성사에 이르렀으나 이인임·임견미 일파의 숙청 때 함께 죽임을 당하고 가산은 몰수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