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성조축도감

  • 역사
  • 제도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건국 직후 도성을 쌓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임시관청.
제도/관청
  • 설치 시기1395년(태조 4)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순구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3월 11일
서울 한양도성 전경 미디어 정보

서울 한양도성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건국 직후 도성을 쌓기 위하여 설치하였던 임시관청.

내용

1395년(태조 4) 윤9월 경복궁과 종묘 · 사직의 공사가 마무리되자, 도성축조령과 함께 도성조축도감이 설치되었다.

관원으로 판사 · 부판사 · 사(使) · 부사 · 판관 · 녹사(錄事) 등이 있었으며, 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鄭道傳)이 성터를 정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듬해 1월 9일부터 영삼사사(領三司事) 심덕부(沈德符)와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의 지휘 아래 1차공사가 시작되어 2월 28일까지 49일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때의 공사는 날씨가 추울 때 이루어진 것이어서 부실한 면이 많고, 또한 축조가 마무리되지 못한 곳도 있었다.

결국, 같은해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역시 49일간 권중화(權仲和) · 박자청(朴子靑)을 제조로 하여 2차공사가 실시되었다.

이와 같은 두 차례의 공사로도 도성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백성 동원의 어려움 등으로 대규모공사는 일단락되어 해체되었다. 그 뒤 세종 때는 도성을 수축할 필요에 의하여 도성조축도감이 설치되었다.

참고문헌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서울육백년사』1(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7)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