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리기 혹은 벼림질이라고도 하며, 주조법과 더불어 금속공예 성형에 대표적 기법이다. 금관총 · 금령총 등에서 발견된 금동 합 · 금동고배 · 각배 등을 비롯하여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관 · 과대 · 요패 등은 대부분 이 기법으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서 특히 경주 황남대총(皇南大塚) 북분에서 출토된 신라의 귀갑금수문은잔(龜甲禽獸文銀盞)은 은으로 반구형의 그릇을 단조하고, 역시 같은 망치질로 처리된 타출법(打出法)을 이용하여 귀갑 문양대 안에 새와 사슴 등 여러 동물들을 정교하게 새겨넣고 있어, 이 무렵 단조 기술의 수준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단조법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청동기시대 및 철기시대에도 이 기법이 일부 적용되었으며, 삼국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금속공예품과 산업제품의 제작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고대의 무기류를 비롯한 각종 생활도구와 가구의 금구(金釦) 장식인 두석(豆錫 : 놋쇠), 풍물용 악기 등 일정한 강도와 밀도가 필요한 특수금속 분야에서는 이 기법이 특히 요긴하게 쓰인다.
단조법이 적용될 수 있는 금속에는 철 · 금 · 은 · 동 등 여러 종류가 있으나, 이 가운데 특히 유기(鍮器)의 일종인 방짜기법은 단조법의 백미로 꼽힌다. 구리(77∼79%)에 주석(23∼21%)을 합금한 방짜는, 상대적으로 무르고 인체에 유독한 아연을 섞는 주물유기로는 제작할 수 없는 식기류나 징 · 꽹과리 · 바라 등 악기를 만드는 데 특히 효율적이다. 11명을 한 조로 하여 작업하는 독특한 협업과정도 방짜유기만의 특징으로 꼽힌다.
평안북도 정주(定州)의 납청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 말기에는 함양(咸陽) · 김천(金泉) · 안양(安養) 등 전국에 걸쳐 널리 보급되었으며, 현재 무형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이 밖에 농기구와 민간의 생활도구 제작에 가장 일반적으로 쓰였던 철을 이용한 전통 단조기술도 대장간의 존재와 함께 사라져 지금은 한두 군데에서 그 원형이 보존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