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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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장 / 광양의 패도
장도장 / 광양의 패도
의생활
개념
문화재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인 장도를 제작하는 기능을 가진 장인.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국가무형문화재(1978년 02월 23일 지정)
소재지
전라남도
목차
정의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인 장도를 제작하는 기능을 가진 장인.
내용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장도는 남녀 구별 없이 허리띠나 주머니끈에 늘 차고 다니면서 호신과 장신구 겸용으로 사용하던 것이 오랜 전통이다. 조선시대에는 경공장(京工匠)으로서 상의원에 소속된 6명의 장인이 왕실 소용의 장도를 전담 제작하였다.

반면에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던 민수용(民需用) 장도는 광양 · 곡성 · 울산 · 영주 · 울진 등 전국에 분포된 사장(私匠)들에 의하여 충당되었다. 본래 도자장(刀子匠)으로 불렸으나 근래에는 환도(環刀) 등 일반 도검류(刀劍類)와 구분하여 장도장으로 일컫는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소형의 도검이 빈번하게 출토된 바 있다.

특히 신라의 금은요대 수식(金銀腰帶垂飾)에 붙은 장도 형태의 장식은 그 시원을 가늠하게 해주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조선시대에는 손칼로서의 실질적 기능보다는 상징성과 장식성이 강조되어 여인들의 노리개장식의 일부가 되는가 하면, 심지어 칼날을 뺄 수 없게 고정된 장도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장식기능이 강조될수록 정교하고 화려한 치장의 장도가 다채롭게 제작되게 마련이다. 특히, 장도집과 자루 등 외부에 노출된 부분에 뿔과 쇠뼈 · 화류 · 먹감나무를 비롯하여 금 · 은 · 밀화(密花) · 대모(玳瑁) · 상아 · 수정과 같은 고급재료를 써서 각종 문양을 조각하거나 상감하였다.

종류는 외형에 따라 첨사도 · 네모도 · 을자도(乙字刀) · 을자맞배기 · 평맞배기 등으로 나뉘는데, 이 가운데 을자도 계통이 가장 일반적이다. 근대기를 거치면서 장도 분야는 수요 기반이 무너져 크게 쇠퇴하였으나 몇몇 장인들에 의하여 그 제작기술이 오늘에까지 전하고 있다. 현재 기능보유자로는 박용기(朴龍基)가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

『금속공예』(문화재관리국, 1984)
『장도장(粧刀匠)』(예용해, 문화재관리국지정보고서,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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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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