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1책. 목판본. 1816년(순조 16) 정교(鄭墧)의 교열을 거쳐 후손 중조(重祖)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이돈우(李敦禹)의 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장서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시 33수, 부(賦) 2편, 표(表) 1편, 계문(契文) 1편, 논 2편, 책문(策問) 3편, 권2는 부록으로 행장·묘갈명·금릉지(金陵誌) 등이 수록되어 있다.
부의 「삼공불환차강산(三公不換此江山)」은 저자가 성균관진사로 있으면서 동당과(東堂科)에 여러 차례 장원도 했으나, 광해군 때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나자 향리로 돌아와 천석(泉石)의 아름다움을 낙으로 삼아 삼공(三公)과도 바꿀 수 없다면서 은거의 결의를 표현한 것이다.
책문 가운데 「왕정필자경계시(王政必自經界始)」와 「전폐책(錢弊策)」은 모두 동당과에 장원한 과문(科文)이다.
「왕정필자경계시」는 맹자(孟子)가 필전(畢戰)에게 일러준 뜻을 확충하여 서술한 것이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때 수백 년 동안 전해 내려오던 전부(田簿)가 불타고 상고할 수 없어 국고는 고갈되고 국민은 징세(徵稅)와 책역(責役)에 시달리고 있으니 경계를 바로잡을 것을 건의하고, 경계를 바로잡으려면 반드시 인정(仁政)을 먼저 실시하여야 하며, 위에서 아무리 인정을 시행하려 하여도 일선행정을 맡은 사람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시행될 수 없으니 인재등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전폐책」 역시 임진왜란 뒤의 경제적 어려움과 민생의 참담한 양상을 서술한 것으로, 사치와 낭비를 줄여서 국민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잘못 들어온 재물은 잘못 나가게 된다는 『대학』의 구절을 들어 덕은 근본이고 재물은 지말(支末)이니 새 법안을 설정해 새 화폐를 만들고 광산을 채굴하는 것은 시급한 일이 아니니, 우선 세금을 삭감해 백성을 요족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이 두 편의 책문에서 임진왜란 뒤 국가의 경제상황과 사회면의 편모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