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후 국내외정세가 급격히 변화하자 대외통상의 새로운 과제에 대처하기 위하여 1880년 12월에 만들어진 통리기무아문이 1882년 11월에 통리아문과 통리내무아문으로 분화되고, 12월에 다시 통리아문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 통리내무아문이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개칭되었는데, 이 두 아문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특히 통리군국사무아문의 경우에는 장관뿐만 아니라 예속된 6사(司)의 우두머리도 독판이라 일컬었다. 그 밑으로는 협판(協辦)·참의(參議)·주사(主事)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