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성전투

  • 역사
  • 사건
  • 일제강점기
1933년 6월 한국 독립군이 중국군과 연합해 일본군 점령 하의 동경성(東京城)을 탈환한 전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재홍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33년 6월 한국 독립군이 중국군과 연합해 일본군 점령 하의 동경성(東京城)을 탈환한 전투.

내용

지청천(池靑天)이 지휘하는 한국 독립군은 1932년 중국호로군(中國護路軍) 사령관 겸 길림자위군(吉林自衛軍) 총사령관 정초(丁超)와 협의한 뒤 한·중 연합군인 중한연군(中韓聯軍)을 조직하였고 중국 의용군이 분화함에 따라 길림구국군과 연합하여 중한연군토일군(中韓聯軍討日軍)을 조직하였다. 각지에서 일본군과 만주군을 공격해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33년 4월 사도하자(四道河子)에서 일·만연합부대 1개 사단을 격파하고 여세를 몰아 영안현성(寧安縣城)을 점령할 계책으로 6월 3일 전 병력을 동원해 공격하기로 하였다.

기병으로 구성된 제1로군은 동모란강(東牡丹江) 부근의 산간으로 진격해 적의 후방 부대를 공격하게 하고, 1개 여단으로 편성된 제2로군은 영안현성과 동경성 중간 지점으로 진격해 적 구원병의 진입을 차단하게 하였다. 그리고 주력부대로 편성된 제3로군은 좌우익으로 나누어 동경성을 공격하였다.

이날 저녁 무렵에 공격을 개시해 3시간 동안 격전이 벌어졌는데, 아군의 공격에 못 견딘 일·만연합군은 북문을 통해 퇴각하였다. 그러나 북문밖에 매복하고 있던 아군에 의해 그들 대부분은 전사하였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혔다.

동경성을 탈환한 연합군은 입성해 주민을 선무하는 한편 전리품을 수습하였다. 그런데 동경성을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군 대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영안성을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한·중연합군의 병력으로는 도저히 영안성을 성공적으로 공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력부대를 각 요지에 분산 배치하고 일본군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가 얼마 후 왕청(旺淸)·동녕(東寧) 사이의 산간 지대로 부대를 이동하였다.

참고문헌

  • - 『독립군의 전투』(신재홍, 민족문화협회, 1980)

  • - 『독립운동사』 5(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3)

  • - 『무장독립운동비사』(채근식, 대한민국공보처,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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