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開港) 이후 1880년대에 정부가 설립한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1885),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 1885), 의학교(醫學校, 1899) 등의 교육기관은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에는 강제 폐교 · 통합되고, 전문학교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배재학당(培材學堂, 1885), 이화학당(梨花學堂, 1886), 숭실학당(崇實學堂, 1897),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1915),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1905)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으나 이러한 사립 학교들은 일제강점기에 사립학교 탄압과 고등교육 억제 정책으로 인하여 전문학교에 머물렀다. 그 결과 1945년에 조선의 서양식 연구 대학은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1924)이 유일하였다.
대학생 교복은 중 · 고등학교 교복과 비슷하나 모자에서 차이를 보였다. 고등보통학교까지는 학생들이 둥근 모자를 착용하였고, 대학생은 사각형 모자를 착용하였다. 사각모의 네 모서리는 중세시대에 대학을 이끌었던 네 가지 학문, 곧 철학 · 법학 · 천문학(신학) · 의학을 상징하였다.
1910년대까지 대학생 교복은 주로 한복이었다. 대학생들은 바지저고리 또는 치마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거나 쓰개치마나 장옷을 썼다. 1910년대 이화학당 대학부의 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배재학당은 1898년(광무 2) 당시 일본의 학생복을 도입하여 스탠드 칼라가 달린 검은 양복(洋服)에 제모(制帽)를 착용하였는데, 밑단, 소매단, 바지 좌우의 겉 솔기, 제모에 태극(太極)을 상징하는 청홍선(靑紅線)을 둘렀다. 단발령(斷髮令) 이후 차츰 한복을 입고, 깎은 머리에 교표를 단 학생모를 쓰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까지 여학생 교복은 대개 한복이었고, 1920년대에 남학생 교복은 양복화되었다. 1920년경에는 여러 학교에서 검정색 짧은 통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게 하고 장옷과 쓰개치마는 벗게 하였다. 길이가 짧은 통치마를 입게 되자 버선과 고무신 대신 양말과 구두를 신게 되었다. 속옷에도 변화가 생겨 속저고리과 속바지 대신에 속셔츠, 팬티, 블루머, 속치마를 입게 되었다. 1920년대의 남학생 교복은 여름에는 흰색 또는 회색, 겨울에는 검은색 목면(木棉)을 사용하여 스탠드 칼라에 앞 단추를 다섯 개 단 형태로, 근래까지 착용된 형태이다. 1920년대의 숭실 · 보성 졸업 앨범에 있는 학생들은 대개 양복 교복을 착용하고 겨울에는 대개 그 위에 코트를 착용하였다.
1930년대에 일제는 여학생 교복을 양장(洋裝)으로 개정하여 한복 교복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梨花女子專門學校)의 교복은 재킷, 블라우스, 치마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