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뻬 (←monpe)

의생활
의복
일제강점기, 전시 체제하에서 여성의 방공 활동 참여와 노동력 동원을 위해 일제가 강제 보급한 바지.
이칭
이칭
일바지, 왜바지
의복
재질
면|인견|합성 섬유
제작 시기
일제강점기 이후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몸뻬는 일제강점기에 전시 체제하에서 여성의 방공(防空) 활동 참여와 노동력 동원을 위해 일제가 강제 보급한 바지이다. 1940년대 초, 일제는 물자 절약 등을 내세우며 여성들에게 부인복·노동복·방공복으로 몸뻬를 입도록 강권했고 뒤이어 ‘몸뻬 필착운동(必着運動)’이 일어났다. 이때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의 관공서, 집회장, 극장, 식당 출입을 막고 버스와 전차 승차를 거부하는 등 일상 통제가 강화되었다. 해방 후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몸뻬의 편의성이 두드러지고 일제의 잔재라는 거부감이 약화되면서 노동복으로 정착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전시 체제하에서 여성의 방공 활동 참여와 노동력 동원을 위해 일제가 강제 보급한 바지.
연원

몸뻬는 일본의 동북지방과 같은 농촌에서 노동과 보온을 위해 착용한, 남녀 공용 작업복에서 유래한 옷으로 1930년대 일본의 도시에서 여성 방공복(防空服), 노동복으로 활용되었다. 일제가 몸뻬를 우리나라에 들여와 여성의 전시(戰時) 의복으로 장려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초반의 일이다. 대략 1942년까지는 애국반 활동과 방공 훈련에 동원된 여성들에게 몸뻬 착용을 촉구하며 전시형 부인복으로 선택하도록 유도했고 이 무렵 『매일신보』에는 몸뻬 만드는 법, 몸뻬 입기에 앞장선 여성의 모범 사례, 몸뻬 강습회 소식 등 몸뻬에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 몸뻬를 입도록 강권하는 움직임이 노골화된 것은 1943년 즈음이다. 몸뻬가 통상복(通常服)이자 남성의 국민복에 대응하는 여성 방공복으로 부각되었고 여성 표준 전시 의복이 몸뻬로 일원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1944년에는 ‘몸뻬 필착운동(必着運動)’이라는 명목 아래 관공서와 학교, 회사, 식당과 상점 종업원의 몸뻬 착용을 필수 사항으로 공표(公表)하고 몸뻬를 입지 않은 여성은 관공서와 집회장에 출입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전차와 버스 승차를 사절하는 등 일상생활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가 뒤따랐다.

형태 및 용도

몸뻬는 바짓가랑이를 넓게 만들고 바짓부리는 오므려 좁힌 것이 몸뻬의 보편적 형태이나, 시기에 따라 여밈 방법과 재료 및 구성에 차이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몸뻬는 앞뒤에 별도의 허리말기에 끈을 달아 돌려 매어 입는 방식으로 허리말기 아래 양쪽 혹은 한쪽에 트임을 두었다. 이후 허리말기와 끈을 없애고 바지허리와 바짓부리에 고무줄을 넣었으며 인조견이나 합성 섬유로 만들어 입으면서 가볍고 간편한 노동복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변천 및 현황

여성이 바지를 겉옷으로 입지 않았던 조선시대의 전통과 일제가 강제로 이식한 옷이라는 사실은 몸뻬에 대한 극렬한 거부감을 낳았다. 그러나 1945년 해방 이후 연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심각한 물자 부족과 생활고를 겪고 국가 재건과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몸뻬는 간편함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도시와 농촌에서 노동복, 일상복으로 자리 잡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고부자, 『우리 생활 100년 옷』(현암사, 2001)
조희진, 『선비와 피어싱』(동아시아, 2003)

논문

안태윤, 「일제 말 전시 체제기 여성에 대한 복장 통제」(『사회와역사』 74, 한국사회사학회, 2007)
조희진, 「몸뻬를 통해 본 의생활의 전통과 외래 문화」(『실천민속학 연구』 4, 실천민속학회, 2002)

기타 자료

『매일신보』(1941.05.02.; 1942.02.22.; 1943.04.10.; 1944.08.05.; 1944.08.10.; 1944.08.11.; 1944.08.12.; 1944.08.13.)
『부산일보』(1937.03.29.; 1939.06.21.; 1939.08.24.; 193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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