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여원(新女苑)』은 젊고 참신하게, 참다운 교양을 전달하며 저속함을 배격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밝고 흐뭇한 기사와 이야기를 전하는 잡지를 내세우며 1971년 12월에 창간하였다. 창간 당시 발행인 겸 편집인은 최상규였으며 코리아 라이프(KOREA LIFE)사에서 크라운판(167㎜×236㎜)으로 발간해 정가 300원에 판매하였다. 창간 기념 2대 사업으로 전국여성클럽상을 제정하고 50만원을 고료하여 문예 작품 모집에 나서는 등 부대 행사를 개최하였다.
『신여원』으로 창간했으나 1974년 8월, 통권 제33호부터 제호를 『여원』으로 바꿨으며 발간사 역시 여러 차례 바뀌어 1972년 11월까지는 코리아 라이프사에서, 이후 1972년 12월에서 1973년 2월까지는 신여원사(新女苑社), 1973년 3월부터 1977년 8월까지는 선일문화사(鮮逸文化社)에서 발간했다. 1995년 4월 종간할 때까지 최종 발간처는 월간 여원사였다.
창간 당시 1950년대 대표적인 여성지였던 『여원』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평가받았으며 1980년대에 『여성동아(女性東亞)』, 『여성중앙(女性中央)』, 『주부생활(主婦生活)』과 함께 4대 여성지로 손꼽혔다. 하지만 여성지 판매 경쟁이 심해지면서 정가(定價)를 넘어서는 과도한 부록 제공, 매달 1일로 제정된 발간일 협약을 파기한 조기 발간으로 유통 질서를 어겨 제재 대상이 되었으며 부적 관련 기사에 실제 부적을 끼워 팔아 대한YWCA연합회로부터 미신을 권장하고 건전한 국민 의식을 저해하는 행동으로 시정을 요구받기도 하였다. 이밖에 허위 인터뷰 및 기사 조작 논란, 연예인 사생활 침해 기사와 관련 소송 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