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해방 이후,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인간혁명』, 『역사와 민족』 등을 저술한 작가. 사상가, 민중운동가.
인적 사항
주요 활동
함석헌은 1923년 오산학교를 졸업한 뒤에 일본으로 건너가 1924년 동경고등사범학교 문과 1부에 입학하였으며, 1928년에 졸업하였다. 재학 중에 일본인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성서연구에 깊이 영향을 받고 김교신(金敎臣), 송두용(宋斗用), 정상훈(鄭相勳) 등과 함께 무교회주의 신앙 클럽을 결성하였다.
함석헌은 1927년에는 동인지 『성서조선(聖書朝鮮)』 창간에 참여하여 글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28년 4월 귀국하여 모교인 오산학교의 교사로 부임하여 역사와 수신을 가르치다가, 1938년 3월 사임하게 되었다. 그후 함석헌은 1940년 평안남도 댕동군 송산(松山)리에서 김혁(金赫)이 운영하는 송산 농사학원을 경영하다가 계우회사건(鷄友會事件)에 연루되어 대동경찰서에서 일 년 동안 구류 생활을 하였다. 1942년 『성서조선』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일 년간을 서대문경찰서에서 미결수로 복역하였다. 1947년 3월 월남하여 YMCA에서 성서강해를 계속하였다.
1956년부터 함석헌은 『사상계』에 자신의 글을 발표하면서 정치적 · 사회적 문제들을 거침없이 비판하기 시작했다. 특히 1958년에는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며 자유당 정권에 도전하였다. 1961년 5·16군사정변 직후에는 ‘5·16을 어떻게 볼까’라는 글을 통해 군사혁명정권에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1962년에 함석헌은 미국 국무성의 초청으로 방미하였을 때 퀘이커교(Quaker敎)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어 1967년에는 장준하(張俊河)의 국회의원 옥중 출마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1970년 4월 『씨ᄋᆞᆯ의 소리』를 창간하였고, 민중 운동을 전개하면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김성수, 『함석헌 평전』 (삼인, 2011)
- 김영호, 『함석헌 사상 깊이 읽기』 전 3권 (한길사, 2016)
- 함석헌, 『함석헌저작집』 전 30권 (한길사,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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