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필(徐載弼, 1864~1951) 박사 가족이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다. 제작 시기는 1892년(고종 29)1898년(광무 2) 또는 19261939년 사이로 추정된다.
총 길이 121㎝, 등 길이 41㎝, 앞품 53㎝, 소매 길이 62.5㎝, 뒤허리 벨트 폭 5.5㎝, 뒤트임 길이 45㎝이다. 소재는 경사 2올을 합사하여 평직으로 제직한 흰색 면직물(綿織物)이다.
길이가 긴 진료가운 형태로 테일러드 칼라(tailored collar)가 달려 있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약간 넓어지는 텐트 스타일(Tent Style)이다. 왼쪽 가슴 윗부분에 주머니 1개, 허리 좌우에 각 1개씩 주머니가 달려 있다.
앞중심을 단추 5개로 여미도록 되어 있고 단추는 구멍에 끼우도록 제작되어 있는데 현재 단추는 없다. 길 좌우에 손을 넣을 수 있는 트임[길이 45㎝]이 있다.
옆선과 어깨선이 뒤로 넘어가 있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의 구성법으로 제작되었다. 소매는 어깨에서 소맷부리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두 장 소매(two-piece sleeve)로 구성되어 있다. 소맷부리에 트임이 있으며, 단추로 여미게 되어 있으나 현재 단추는 없다. 앞 중심과 소매의 단추 구멍은 버튼홀 스티치(buttonhole stitch)로 마감하였다.
뒤 허리 중심에 별도로 재단한 너비 5.5㎝의 밴드형 벨트가 있으며, 좌우 벨트는 단추로 고정하였다. 뒷면은 프린세스 라인(princess line)처럼 양쪽으로 봉재선이 있다.
오른쪽 앞자락 안쪽에 필라델피아의 가운 제작처 주소와 함께 38 Dr. J.P.S.가 새겨진 천이 따로 부착되어 있다.
현대의 진료가운과 다르게 칼라의 폭이 좁고 앞여밈의 첫 번째 단추가 상당히 위에 달려 있다.
홑옷으로 어깨와 겨드랑이에 바대가 있다. Z꼬임의 약 0.33㎜ 두께의 면사를 사용하여 재봉틀로 바느질하였다. 바늘땀은 약 1.7~1.9㎜ 간격이다.
보존 처리 전 착용 흔적이 많이 남아 있었고, 빳빳하게 풀을 먹였다. 주머니의 안쪽과 해진 부분 등이 붙어 있는 것이 확인되어 풀을 먹인 이후로 가운을 착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보존 상태는 전체적으로 구김, 황색 얼룩, 반점이 확인되며 특히 보관 상자의 크기에 맞게 유물을 사각형으로 접어 보관하면서 발생한 구김과 변색이 심한 편이다. 좌측 아래 3㎝ 정도 구멍 주변과 좌측 앞길 · 주머니 · 소매 뒤쪽에 잉크가 묻은 흔적이 있으며, 칼라 안쪽에는 흑색 볼펜으로 쓴 ‘JOE’라는 글씨가 있다. 앞길 우측 안쪽에는 ‘Dr. P. S. J.’의 영문 머리글자[initial] 라벨과 진료가운을 제작한 미국 필라델피아 ‘C.D. Williams & Co.’의 상호 및 주소가 표기된 라벨이 각각 부착되어 있다. 또한 ‘C.D. Williams & Co.’와 ‘Dr. Philip Jaisohn’ 사이에는 ‘38’이라는 숫자도 확인되는데 이것은 기성복(旣成服) 치수 규격으로 보인다. 모두 7개의 라벨로, 상호 다음에 오는 치수와 이름을 한 글자씩 오려 붙여 재봉틀로 한 번에 바느질하였다.
서재필 진료가운은 오염된 곳과 손상된 곳이 있었고, 풀을 먹여 접어 보관하면서 변색과 함께 굵은 주름이 발생하였다. 2018년 4월부터 1년여 동안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에서 서재필 진료가운에 대한 유물 조사와 세척 및 형태 보정 등의 보존 처리를 하였고, 서재필 박사에 대한 중요 기록이 세척 과정 중에 지워지거나 번지지 않도록 안정화 처리를 하였다.
갑신정변(甲申政變) 주역, 『독립신문』 창간자, 독립운동가였던 서재필이 의사로서 미국에서 활동할 때 착용하였던 진료가운이다. 한국에서 제작한 진료가운은 아니지만 미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동시에 의사였던 서재필의 모습을 입증해 주는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