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82년 1월 4일, 중 · 고등학생의 두발 및 교복 자율화정책을 발표하였다. 두발 자율화는 1982년 1학기부터 당장 시행되었으며, 남녀 학생 모두 지나친 장발이나 파마 머리가 아닌 한 자유로운 스타일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남학생은 스포츠형 머리를 기본으로 하였고, 여학생은 단발의 경우 머리의 길이가 귀밑 1㎝보다 좀 더 길어지고 커트 머리가 허용되었으나, 긴 머리는 양갈래로 묶거나 땋도록 하였다. 교복은 1982년 1학기부터 시범 실시한 후, 1983년 신입생부터 자유복 등교가 전면 시행됐다. 교복과 두발은 자율화를 원칙으로 하되 추진 방안은 교장에게 일임하였다.
교복이 일제의 잔재이며, 학생의 개성을 무시하고 획일화시킨다는 비판과 함께 교복 구매 비리가 끊이지 않자, 1977년 문교부는 중고생의 교모와 교복을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그러나 부정적 여론이 일자 1978년 9월 교복은 존속시키되, 일제의 잔재인 제복 수준을 벗어나 다양화하도록 학교에 재량권을 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암살로 18년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자,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졌으며, 중 · 고교생들도 교복과 두발 자유화 요구를 하였다. 새로 취임한 김옥길 문교부 장관은 학원자율화정책과 함께 “중고교 교복, 모자 자율화 방침”(1979.12.21.)을 발표하였지만, 사회적 논란만 일고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1982년에 두발과 교복자율화정책을 전면 추진한 것이다.
학생들은 환영하였지만, 정책 시행 이후 자유복장으로 인해 가계 부담 증가, 빈부 격차로 인한 위화감 조성, 유해환경 노출로 인한 탈선과 비행의 증가, 교외지도의 어려움 등의 비판이 거셌다. 무엇보다 학생다움이 사라졌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부정적 여론에 부딪힌 정부는 1986년 2학기부터 학교장 재량으로 교복 또는 자유복을 결정하도록 하였다.
규제 일변도의 학교문화에 학생과 학교의 자율성이 일정 부분 부여되었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학생과 학교, 학부모를 상대로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정책을 추진한 결과, 자율성 신장이라는 취지를 크게 살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