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국장화첩 ()

사진
문헌
1919년, 경성일보사가 고종의 국장 과정을 찍은 사진 등을 엮어 발행한 사진첩.
문헌/도서
저술 시기
1919년
간행 시기
1919년
저자
경성일보사
책수
1권
출판사
경성일보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덕수궁국장화첩』은 1919년 경성일보사가 고종의 국장 과정을 찍은 사진 등을 엮어 발행한 사진첩이다. 조선 제26대 왕으로 1919년 정월에 사망한 고종의 장례식 모습을 담은 이 사진첩에는 총 49장의 사진이 수록되었으며 고종의 생전 모습과 국장 의전의 전체 과정이 담겨 있다. 이외에도 고종 황제의 붕어 소식을 보도한 1919년 1월 22일 자 『매일신보』의 호외를 수록하고 있다.

정의
1919년, 경성일보사가 고종의 국장 과정을 찍은 사진 등을 엮어 발행한 사진첩.
구성과 내용

『덕수궁국장화첩(德壽宮國葬畵帖)』은 1919년 1월 21일 갑작스럽게 사망한 고종의 장례식 과정을 담은 사진첩이다. 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이유로 태황제(太皇帝)로 퇴위당하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후 이태왕(李太王)으로 강등되어 경운궁에 유폐되었다. 1919년 1월 21일 갑작스럽게 주9한 후 3월 3일 시행된 장례식 사진을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였던 『경성일보』가 정리하여 사진첩으로 발행하였다.

세로 28.6㎝, 가로 21㎝ 크기의 사진첩에는 49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고종의 생전 모습과 국장의 전체 과정이 담겨 있다. 본문 앞쪽에는 제언(題言)과 목차가, 본문은 연미복(燕尾服)을 입은 고종의 사진을 시작으로 국장의 여러 장면과 고종 및 국장과 관련된 장소 및 인물의 사진 등이 수록되어 있고, 사진마다 제목이 붙어 있다. 이외에도 고종 황제의 주10 소식을 보도한 1919년 1월 22일 자 『매일신보』의 호외(號外)를 수록하고 있다.

1919년 3월 3일 고종 황제의 주1이 경운궁을 떠나는 인산일(因山日) 아침, 경운궁 대한문 앞에는 커다란 하얀 차일 아래 주2가 놓여 있고, 수많은 일본 군인들이 배치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국장과 비교할 때, 고종의 국장은 고종의 지위 변동에 따른 사제(賜祭) 형식으로 치뤄졌다. 일본 천황이 죽음을 애도하여 내려주는 제사 형식이 국장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으며, 공식적 일본식 장례와 비공식적인 조선식 장례의 이원화로 진행하였다.

조선시대 국왕의 상례는 왕이 숨을 거둘 때부터 발인(發靷), 우제(虞祭) 등을 거쳐 상복(喪服)을 완전히 벗는 담제(禫祭) 때까지의 과정을 모두 포괄하였다. 전통적인 국장 의례는 혼을 모신 주3 행렬이 인도하고, 주검인 백(魄)을 안치한 대여 행렬이 뒤를 따라 산릉까지 갔다. 그러나 대여 행렬은 대한문을 출발한 후 황금정[현, 을지로]을 경유하여 훈련원에 차려진 장례식장에서 일본식 장례 의식을 치루었다.

일본식으로 변경되면서 관을 실은 대여 행렬과 주4을 모신 신연 행렬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장의괘 주관으로 거행되었던 ‘국장봉고의(國葬奉告儀)’, ‘사뢰의(賜誄儀)’, ‘매장 전(前) 영구(靈柩) 앞에서 거행하는 제의’, ‘영거(靈輿) 발인의(發引儀)’, ‘장장제의(葬場祭儀)’, ‘매장 후 권사(權舍)[임시 건물]에서 거행하는 제의(祭儀)’, ‘매장 후 묘소(墓所)에서 거행하는 제의’ 등 7가지 주요의식은 일본식으로 진행되었다. 한편 구식으로 치부된 조선 전통의 길흉의장(吉凶儀仗)과 신연 행렬은 대한문을 나와 광화문, 종로를 거쳐 흥인지문으로 향하였다. 두 행렬은 흥인지문 밖에서 비로소 하나로 합쳐져서 금곡 홍릉까지 이어졌다.

동시에 거행된 조선 전통의 장례 의식 사진은 『이태왕국장의사진첩』에 10여 주5 수록되어 있고, 앨버트 테일러(Albert 주6가 남긴 철거된 흥인지문 옆 성벽을 지나가는 전통 장례 행렬 사진 2점이 주7

의의 및 평가

일본식 장례 의식에 따른 고종 황제의 국장 장면을 담은 『덕수궁국장화첩』은 조선 사람들에게 식민지 백성의 처지를 대변하는 것이 되어 반일(反日)의 감정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장례 기간인 3월 1일에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한 독립선언서가 선포되었다. 고종 국장은 “ 3·1운동과 이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제국(帝國)을 마감하고 민국(民國)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주8

또환 국장 행렬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과 주변 건물 등의 모습에서 당시 경성의 면모와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다. 전통과 근대의 관점에서 볼 때 고종 국장의 중심 의식인 장장제의(葬場祭儀)는 근대적 의식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덕수궁국장화첩(德壽宮國葬畵帖)』(경성일보사, 1919)

신문·잡지 기사

「고종황제 백성과 이별하는 날 모습」(『우리문화신문』, 2017. 3. 1.)
「고종 국장행렬 파노라마식 사진첩 발굴」(『하늘문화』, 2009. 3. 3.)

인터넷 자료

주석
주1

임금의 관.

주2

국상 때에 쓰던 큰 상여.

주3

혼을 모신 수레.

주4

임금의 빈전에 모시는 베로 만든 신주(神主).

주5

「고종 국장행렬 파노라마식 사진첩 발굴」(『하늘문화』, 2009. 3. 3). 바로가기

주6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1875~1948]는 대한제국 및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활동하던 미국의 기업인이자 언론인이다. UPI 통신사 특파원을 겸임하면서 3·1독립선언서를 외국에 알리고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에 적극 협조하였다.

주7

이 사진들은 2017년 3월 3일부터 4월 9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고종황제의 마지막 길’ 전시에서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주8

이한영, 「고종황제 백성과 이별하는 날 모습」(『우리문화신문』, 2017. 3. 1). 바로가기

주9

왕이나 왕족, 귀족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10

임금이 세상을 떠남.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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