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이유로 태황제(太皇帝)로 퇴위당하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 이후 이태왕(李太王)으로 강등되어 경운궁에 유폐되었다. 1919년 1월 21일 갑작스럽게 주4하였고, 3월 3일 장례식이 시행되었다. 고종의 국장은 일본식 장례로 치러졌으며 조선 장례 의식을 따른 행렬이 뒤를 따랐다.
고종 국장 사진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가 1919년 3월 발행한 『덕수궁국장화첩』,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이태왕전하 장의 사진첩』 등을 통해 알려졌다. 『이태왕국장의사진첩』은 특히 일본의 제국주의적 관점이 드러나는데, 일본식 장례 사진 28점을 먼저 실은 뒤 조선 장례 행렬 사진 10점을 부록으로 주1
『이태왕국장의사진첩』은 세로 28㎝, 가로 44㎝, 두께 7.8㎝ 크기의 사진첩이다. 3월 3일에 진행된 국장 행렬의 전 과정을 담고 있는 빈티지 사진첩으로 사진을 번호로 구분한 뒤 해당 의식을 설명하였다. 경성일보사가 발행한 『덕수궁국장화첩』은 일본식 장례 행렬과 조선식 장례 행렬 장면을 섞어 편집한 반면, 이 사진첩은 두 개의 행렬을 명확하게 구별하여 일본식 장례 행렬을 먼저 실었다. 현재 일본 정부 산하의 궁내청 ‘서릉부(書陵部) 도서료문고(圖書寮文庫) 궁내공문서관(宮内公文書館)’에서 소장하고 있다. 사진첩 뒷면 서지 정보에 조선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사부로[山縣伊三郎]에게 헌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태왕국장의사진첩』은 제작의 목적과 출처가 분명하고, 사진 촬영 수준이 매우 뛰어난 주2 ‘이태왕’은 태황제로 불리던 고종을 일제가 낮춰 부른 명칭이다. 이런 맥락에서 일본식 의장대와 군악대,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승천기를 든 보병대, 일본식 장례 복식을 갖춘 행렬을 중심으로 제작되었고, 부분적으로 행렬과 고종의 대여[국상 때 쓰던 큰 상여]를 따르는 순종과 영친왕의 마차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경민에 따르면 “이는 전통적인 장례를 구식[전근대적], 일본식 장례를 신식[근대적]으로 본 당시 일제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