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 村上幸次郞로도 불림, 1867~?]은 쿄토[京都]출신으로 1886년 쿄토의 마루야마[圓山]에서 사진업을 하다가 청일전쟁 당시 조선에 들어와 평양전에 참가한 후 『메자마시신문』 특파사진사가 되었다. 1894년 10월경 인천에 상륙했고, 1895년 3월 남산 일본공사관 밑의 생영관(生影館)에서 근무하다가 1897년 5월 천진당(天眞堂)을 개업하였다.
무라카미 텐신은 청일전쟁기 동학농민전쟁시 압송당하는 전봉준(全琫準)과 동학농민군 지도자인 안교선(安敎善)과 최재호(崔在浩)의 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1897년 천진당을 개업하면서 조선에 정착하였는데, 1900년 전후부터 1910년 10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두드러진 활동을 하였다.
사진관 영업 활동의 일환으로 외국인, 조선을 방문하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대상으로 조선 관련 사진 아카이브를 구축하여 상품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서울의 주요 지형과 건축물, 기념물에 대한 정보를 주는 사진과, 주요 지방의 지형적 특징을 파악케하는 원거리 풍경사진, 그리고 관광용으로 조선의 풍속사진을 찍어 판매했다.
또한 황실 공식 사진사는 아니었지만 1900년 경부터 고종, 순종, 영친왕, 순종 순행 등 황실의 초상사진을 촬영하였고, 황실 사진은 후에 다양한 매체에 활용되었다. 1907년 10월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嘉仁, 1879~1926, 이후의 다이쇼천황]가 타케히토[有栖川宮威仁] 친왕과 함께 조선을 방문했을 때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무라카미는 일본 황태자와 타케히토 친왕이 창덕궁에 영친왕 이은과 함께 있는 모습 및 경복궁 경회루 앞 등 총 3곳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1910년 5월 개최된 일영박람회(日英博覽會) 관련 『일영박람회출품사진첩』을 편찬했다. 사진첩에는 총 79점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당시 박람회에 출품했던 조선군 갑옷과 한옥 모형 및 각종 생활물품과 함께 풍경사진이 주로 실렸다. 사진첩의 말미에 양반가정, 세탁 등과 같은 조선 풍속류의 사진이 들어있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가 암살당하고 조선총독부가 들어선 이후 통감부 시기 어용사진사로서의 지위를 누렸던 무라카미의 특권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대신 무라카미는 가업으로 사진업을 정착시키는 동시에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대어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재한일본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무라카미 텐신과 천진당사진관은 일본의 조선 진출을 기록하고 대내외에 시각적으로 선전하는 선봉대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할 수 있다. 천진당사진관의 활동은 조선에서의 근대 사진의 도입과 발전을 확산하는 역할을 하여 한국의 근대 시각문화 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했으나, 그 배경에는 식민주의적 시각과 목적이 깔려 있었다. 일제강점기라는 맥락에서 일본인의 시각으로 조선을 기록하고 근대적 이미지를 생산했다는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