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5만 7742㎡. 광해군은 초기에는 빈민구제와 국방에 주력하는 등 치적이 많았으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고 1623년(인조 1) 3월 광해군으로 강봉되었으며, 같은 해 3월 폐비 유씨와 함께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도로 이배(移配)되었다.
1641년 7월 이배지에서 죽어 그 곳에 장사지냈다가 1643년 10월에 지금의 묘소로 천장(遷葬)하였다. 문성군부인 유씨(文城郡夫人柳氏)는 지돈녕부사 자신(自新)의 딸로 1576년에 태어나 1587년(선조 20) 군부인이 되었다. 1592년(선조 25) 세자빈으로 진봉(進封)되었으며, 1608년(광해군 즉위년) 왕비로 진봉되었다.
1623년 광해군과 함께 폐출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으며 그해 10월 강화도에서 죽어 양주군 적성동에 장사지냈다가 광해군이 죽은 뒤 같은 묘역에 천장하였다. 비석, 혼유석, 향로석이 쌍분 앞에 각기 설치되어 있으며 석망주 1쌍, 문석인 1쌍이 서로 마주보며 배치되어 있다.
광해군 묘비 전면에 ‘광해군지묘(光海君之墓)’, 후면에 ‘신사칠월초일일병졸어제주명철조삼일(辛巳七月初 一日病卒於濟州命輟朝三日)’이라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