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타 가나에는 후쿠이현[福井縣] 출신으로 1898년 12월 조선에 와서 일제강점기까지 사진관 영업을 하였다. 처음에는 무라카미 텐신[村上天眞]이 근무하던 남산 일본공사관 밑의 생영관(生影館) 사진기사로 근무하다가 1900년 무렵부터 사진관을 인수받아 독립적으로 경영하였다. 1904년 본정으로 이전한 이후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광고를 내며 사진관을 주1 이와타는 이후 사진관을 1905년 장동[현 중구 회현동]으로 옮겼고, 1907년 경 본정 2정목[현 충무로 2가]으로 이전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암전사진관으로 상호를 바꾸고 지점도 주2
1909년 남대문통 2정목[현 남대문로 2가]로 신축 이전하여 1913년 경까지 운영했고, 이후 황금정 1정목에 또 다시 신축 이전했다. 암전사진관은 천진당, 옥천당, 키쿠타사진관과 함께 1900년대 초부터 신문에 서로 경쟁하듯이 사진관 광고를 내면서 공격적인 영업을 한 결과 1910년대에는 이들과 함께 서울의 가장 대표적인 일본인사진관으로 자리 잡게 주3
경성 내의 사진사로써 입지를 확실하게 굳힌 것은 1907년 일본 황태자 방문 무렵으로, 황태자 요시히토의 기념사진첩을 제작, 판매하였다. 1907년 고종황제 어사진을 촬영했는데, 사진 하단에 경성 암전정 근사(岩田鼎 謹寫)라고 촬영자 이름이 압인되어 있다.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에 이어 1909년 순종황제와 순종비의 어진을 촬영했다. 메이지 천황의 초상사진을 참고하여 순종황제의 공식 초상사진을 촬영하는 등 통감부의 정치적인 의도에 따른 사진을 통하여 근대화된 군주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충군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기여했다.
1922년에는 영친왕(英親王) 이은 부처와 이진 왕세손(李王世孫)의 가족사진 등을 촬영하며 1920년대까지 조선 황실의 촉탁사진사로 주4 한일강제병합 이후에는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에 사진을 출품하거나 1922년 조선사진협회 공모전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고, 안중근 초상사진 엽서를 판매하여 치안방해죄로 구속되기도 주5
암전사진관은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 모두에게 인기 있는 스튜디오로 경성의 상징적 장소 중 하나였다. 대한제국 황실의 중요한 행사와 인물을 사진기록물로 남겼다. 일본 측 자료에서 암전사진관과 관련된 정보는 일본의 여러 역사자료 아카이브와 도서관에 분산되어 있다. 아시아역사자료센터[JACAR]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NDL] 등의 디지털 자료실에서 관련 문서를 확인할 수 있다. 암전 사진관 관련 자료는 주로 외무성과 방위청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진관이 당시에 일본 외교 활동의 일부로서 기록된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