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명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노동총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북풍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노동운동가.
이칭
이칭
정우호(鄭宇鎬), 마명(馬明), 마승주(馬昇宙)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대구
정의
일제강점기 노동총동맹의 중앙집행위원, 북풍회 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노동운동가.
개설

본명은 정우호(鄭宇鎬), 가명은 마명(馬明), 마승주(馬昇宙). 대구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20년 대구노동공제회 결성에 참여했다. 1923년 10월 김약수 등 일본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북성회원들과 함께 건설사를 조직했다.

1924년 4월 조선노농총동맹 창립대회에서 기초위원, 중앙위원으로 선정되었으며, 1925년 9월에는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4년 11월 김약수·김종범 등과 함께 북성회를 개편하여 북풍회를 결성하였다. 이때 북풍회 집행위원이 되었으며, 연문사(硏文社)를 조직하여 북풍회의 선전·홍보 활동에 종사했다.

1925년 4월 전조선민중운동자대회 준비위원회에서 최원택(崔元澤)·김남수(金南洙)와 함께 경상·전라 지역을 맡았다. 1925년 5월 조선공산당에 입당했으나 11월 당내에서 북풍회의 종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정권 처분을 받았다.

1920년대 대구 지역에서 대구노동공제회를 이끌면서, 우해룡(禹海龍) 등과 함께 사상단체 혁조단(革造團)을 조직하였다. 특히 1925년에는 대구시 운수노동자들의 대구노동친목회 발족을 후원하였다. 1925년 7월 대구노동친목회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축사를 하였는데, 축사의 내용이 자본주의 제도를 비판하고 소련 공산주의를 옹호하였다는 이유로 검거되었다.

1925년 12월 보안법위반죄로 징역 3월을 선고받았다. 1926년 봄 대구지역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 관련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1928년 7월 무혐의로 석방되었다. 1930년 3월 또다시 구속되었다. 1930년 11월과 12월 「조선사람의 운명을 制하는 당면의 농촌정책문제」를 『별건곤』 34·35호에 기고하였다.

참고문헌

『왜정시대인물사료』 5
『한국공산주의운동사』 2(김준엽·김창순, 청계연구소,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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