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희경

  • 종교·철학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중기에, 북부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역학과 성리학 연구에 전념한 학자.
이칭
  • 죽계(竹溪)
  • 중적(仲積)
인물/전통 인물
  • 본관목천(木川)
  • 사망 연도1589년(선조 22)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525년(중종 20)
  • 출생지개성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윤혁동 (성균관, 한학)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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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북부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역학과 성리학 연구에 전념한 학자.

개설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중적(仲積), 호는 죽계(竹溪). 개성(開城)에서 출생하였다. 남달리 영특하고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당대 문명이 높은 서경덕(徐敬德)에게 사사받아 학문의 깊은 뜻을 습득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7년(선조 즉위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오직 학문에만 전력하였다. 1581년(선조 14) 이이(李珥)가 천거하여 북부참봉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특히 그는 역학과 성리학에 심취하여 그 연구에 일생을 바쳤다. 어느 날 윤두수(尹斗壽)가 찾아가서 그의 학자됨을 보고 “난초는 고랑에 깊었으나 그 향기 저절로 스며드네.”라 하여 그의 학문을 높이 칭송하였다. 개성의 사현사(四賢祠)에 배향하였다.

참고문헌

  •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 『목천마씨세보(木川馬氏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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