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권 2책. 연활자본. 1932년 조카 해룡(海龍)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말에 이탁영(李鐸英)의 발문과 박기동(朴淇東)의 후지(後識)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에 있다.
권1·2에 시 25수, 소(疏) 3편, 차(箚) 3편, 전(箋) 6편, 교서(敎書) 6편, 서(書) 45편, 서(序) 4편, 사제문(賜祭文) 2편, 제문 3편, 축문 42편, 묘갈명 1편, 권3에 경연강의(經筵講義) 1편, 정원일기(政院日記) 2편, 권4는 부록으로 만사 32수, 제문 7편, 가장(家狀)·행장·묘지·묘갈명 각 1편, 만휴당기(晩休堂記)·상량문, 영우실기(寧愚室記), 임하일루기(林下一樓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의 「임오군변후진시폐소(壬午軍變後陳時弊疏)」는 임오군란 후 시폐를 논한 것으로, 이 병란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지적하고 담당 관리들을 문책할 것을 강조하면서 아울러 고위층의 사치풍조 및 뇌물 수수를 엄단할 것과 명분과 기강을 확립하여 외세 인적(隣敵)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고 진술하였다.
차 중 「청물행의대장차(請勿行衣帶葬箚)」는 임오군란 후 명성황후의 실종을 사망한 것으로 단정, 국상(國喪)을 치를 것을 공포하자, 민비의 생사여부를 정확히 모르고 시신도 없으면서 빈소를 차리고 의대장(衣帶葬)을 치르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며, 다행히 명성황후가 해를 피하여 돌아오게 되면 국내는 물론 국외의 비웃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 장례절차를 철수하고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주청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