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는 자연마을마다 그 부락의 토지와 주민의 생사·생업 등 모든 일을 차지하여 수호하는 신이 있고, 이 신을 모신 신당을 본향당이라 한다.
이 본향당에는 그 신당의 관리와 제의를 도맡아 하는 심방(무당)이 있으니, 이를 매인심방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금은 이 매인심방제도가 많이 흐트러져서 아무 심방이나 그 당의 본풀이(堂神話)와 제의방법을 알고 있으면 제의를 할 수 있는 본향당이 태반이 되어 버렸지만, 예전에는 본향당마다 매인심방이 있어 다른 심방은 그 당의 제의를 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매인심방은 같은 마을의 심방이 되게 마련이었고, 대대 세습으로 계승하는 곳이 많았다.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리·하례리의 본향당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 두 마을은 본래 예촌(禮村)이라는 자연부락으로 출발했고, 따라서 본향당도 하나였다.
이 당의 본풀이에 의하면 이 당의 신은 ‘백관님’·‘도원님’·‘도병서’ 3위인데, 이 신들이 이 마을을 차지하기 위해 마을 가까이 있는 ‘칠오름’ 라는 산에 와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이 때 박씨 심방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우리들이 좌정할 곳을 안내하라.”고 했다.
박씨 심방이 <비야기○밧>이라는 곳에 당을 마련하여 안내하니, 신들은 “그러면 거기 좌정할 터이니, 너는 나를 모셔서 이 마을을 차지하여 벌어먹어라.”고 했다.
그래서 박씨 심방이 매인심방이 되었는데, 그 후 대대손손 계승하여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 박씨 심방의 집안은 현재 22대를 세습했다고 하니, 이로 미루어 보아 매인심방제도가 매우 오랜 것임을 알게 된다.
매인심방은 단골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단골이란 제주도에서는 본향당의 신앙민을 뜻한다. 본향당신은 마을의 수호신이고, 그 신앙민은 그 마을사람이 되니, 단골은 곧 그 마을사람이 되는 것이다. 단골은 성씨별로 상·중·하단골로 계층 구분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김씨가 상단골, 이씨가 중단골, 박씨가 하단골이라는 식으로 마을 주민들이 성씨에 따라 그 어느 계층의 단골에 속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경우 상단골의 집안은 매인심방과 협의하여 본향당을 관리하고 여러 가지 제의를 주관할 뿐 아니라, 매인심방의 생계를 보장할 대책을 마련해주는 데도 힘을 써야 한다.
그래서 매인심방들은 단골 곧 그 마을의 주민들에게서 식량을 모여 받아 생계를 유지해 왔었다. 오늘날 이 제도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30∼40년 전까지는 이 제도의 자취가 남았었다고 한다.
전승에 따르면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의 경우는 부씨·현씨 상단골 집안에서 하곡을 거두어들이면 보리 1말, 밀 1말, 녹두 1말씩을 모아 주고, 추곡을 거두어들이면 밭벼 1말, 조 1말, 콩 1말씩을 거두어 주었다.
매인심방은 본향당집에 살며 신을 모시는데, 이 곡식으로 생계를 유지했으며 채소류는 주민들이 당집 옆에 있는 물에 씻으러 왔다가 나누어주는 것을 얻어먹어 살았다고 한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의 경우는 하곡을 수확할 때와 추곡을 수확할 때에 매인심방의 처가 마을을 집집마다 돌게 되어 있었다. 그러면 집집마다 여름에는 보리 1되 이상, 가을에는 조 1되 이상씩을 내어 주어, 이것을 모아다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생계를 유지해 받으면 매인심방은 당을 지켜 관리하고 당의 제의를 맡아 할 뿐만 아니라, 단골들의 집안의 아기비념[小兒成長祈願儀禮]나 넋들임 등 소규모의 무의(巫儀)는 보수 없이 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런 관습은 한 마을 사람들은 모든 무의를 그 마을의 매인심방에게 의뢰하게 되고, 매인심방은 그 마을 사람들의 모든 무의를 도맡아 할 권리가 있는 것으로 되었다.
이런 경향은 오늘날도 남아 있으나, 엄격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오늘날은 마을마다 심방이 없으므로 다른 마을의 심방을 매인심방으로 삼기도 하고 또 매인심방이 없는 곳도 많다. 매인심방이 정해져 있는 곳이라도 단골들이 생계유지를 책임지는 일이 없으므로 매인심방은 그 당의 정기적인 당굿만을 맡아서 하는 정도에 그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