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매지권은 돌이나 항아리에 새긴 묘지매입문서이다. 매지첩(買地牒)·매지별(買地?) 또는 총권(?券)이라고 부른다. 중국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장례 풍속으로 묘지에 대한 신의 보호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풍습이다. 지신(地神)에게 무덤으로 쓸 땅을 매입한다는 내용을 새겨서 당시 화폐나 지전(紙錢)을 무덤에 함께 넣었다. 신에게 묘의 안호를 기원하는 것과 묘지소유권을 확인하는 매매계약문서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이후 도교신앙과 융합되면서 지신에게 묘지를 구입하는 형식으로 변하였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무령왕과 왕비의 매지권이 발굴되었고, 고려시대의 매지권은 여러 점 발견되었다.
정의
돌이나 항아리에 새긴 묘지매입문서.
개설
이것은 무덤을 쓴 뒤에라도 아무도 이 땅을 침범하지 못하며, 또 유체(遺體)의 안녕과 보호를 신에게 부탁한다는 사상에서 나온 동양사람들의 민속이다. 이것을 ‘매지권’ · ‘매지첩(買地牒)’ · ‘매지별(買地莂)’ 또는 ‘총권(冢券)’이라고 부른다.
내용
이와 비슷한 성질의 것은 후한(後漢) 환제(桓帝) 영수(永壽) 2년(156)명(銘)의 독〔甕〕을 비롯해 영수 2년 3월, 영화(永和) 6년, 건녕(建寧) 4년, 광화(光和) 2년명의 독 등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지신에게 토지를 샀다는 의식은 없으나 묘의 안전을 신에게 기원함에 있어서는 그 성질이 같다.
매지권에는 신에게 묘의 안호를 기원한 것, 묘지소유권을 확인한 매매계약문서의 두 가지 형식이 있다. 그러나 뒤에 이 두 형식은 도교신앙과 융합, 발전되면서 병합되어 지신에게 돈을 주고 묘지를 구입하는 형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이런 형태를 금석가(金石家)들은 일반 토지매매문서와 마찬가지로 매지권 등의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는 주밀(周密)의 「계신잡지(癸辛雜識)」에 잘 나타나 있다.
매지권의 발생연대는 묘옹(墓甕) · 묘권(墓券)과 거의 같은 시기로 볼 수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일본 동경의 서도박물관(書道博物館)에 있는 161년(延熹 4)에 만들어진 종중유처진묘권(鍾仲遊妻鎭墓券)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매지권은 먼저 백제 무령왕릉의 매지권을 들 수 있다. 무령왕릉의 발굴을 통하여 무령왕과 왕비의 매지권이 확인되었는데, 무령왕릉의 매지권 전문(前文)에는 중국 양(梁)에서 받은 작호인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과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보이는 무령왕의 휘(諱)인 ‘사마왕(斯麻王)’이 확인되어 이 무덤이 무령왕릉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무령왕의 나이가 62세였던 점과 장사지낸 기간 등을 알 수가 있다.
한편 고려시대의 매지권도 여러 점 발견되었다. 대표적으로 1141년(인종 19)에 만들어진 고려 현화사(玄花寺) 주지(主持) 천상(闡祥)의 매지권, 1143년에 만들어진 고려 송천사(松川寺)의 승려 세현(世賢)의 매지권 등이 있다. 그 중 후자는 한행은 바로 쓰고 또 한행은 거꾸로 쓰여 있어 남한(南漢) 마이십사랑매지권(馬二十四娘買地券) 및 송나라의 주근매지권(朱近買地券)과 일치한다.
참고문헌
- 「무녕왕(武寧王) 매지권(買地券)을 통하여 본 웅진시대(熊津時代) 백제(百濟)의 조세제도(租稅制度)」(이희관, 『국사관논총(國史館論叢)』제82집, 국사편찬위원회, 1998)
- 「무녕왕(武寧王) 매지권(買地券)을 통하여 본 백제(百濟)의 토지매매문제(土地賣買問題)」(이희관, 『백제연구(百濟硏究)』제27집,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1997)
- 『백제무녕왕릉(百濟武寧王陵)』(충청남도·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91)
- 「지석(誌石)의 형태(形態)와 내용(內容)」(성주탁·정구복, 『백제무녕왕릉(百濟武寧王陵)』,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1991)
- 「金門出宋墓買地券考釋」(方豪, 『中國歷史學會史學集刊』1971年 3期)
- 『語石』(葉昌熾, 臺灣商務引書館, 1970)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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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시체가 놓이는 무덤의 구덩이 부분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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